전세계 1백20개국 5천여개 매장에서 매년 1억벌 이상의 옷을 판매하고 있는 세계 굴지의 의류기업. 에이즈 환자의 시체나 죽은 병사의 피묻은 군복 등 충격적인 광고사진으로 이름난 캐주얼 왕국. 그에 반해 해마다 선보이는 1천5백여종의 신제품 광고는 전혀 하지 않는 괴짜 회사.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인 기업 색깔을 유지하고 있는 베네통 그룹의 설립자 루치아노 베네통 회장(66)이 22일 한국을 찾았다. 유엔이 정한 '2001 세계 자원봉사자의 해'를 맞아 베네통코리아가 기획한 사진전시회및 기념품 판매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은 없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할 뿐이죠" 무일푼으로 시작해 55억달러의 재산가(포브스지 선정 세계 갑부 57위)가 된 인물. 베네통 회장은 성공 비결에 대해 '자유로운 발상'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창조와 자유라는 그의 경영정신은 그 유명한 광고 캠페인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소비자의 눈을 붙잡는 광고시리즈를 통해 '유나이티드 컬러스 오브 베네통'은 더욱 유명한 상표가 됐다. 자신 또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양손으로 중요한 부분만 가리고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중고 의류를 난민에게 보내자는 캠페인을 할 때였죠. 내가 벗는 것이 가장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사진작가가 말하더군요. 그래서 벗었죠" 베네통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온 몸으로 실천한 것이다. 그의 관심은 주로 주류에서 소외된 자들과 아픔을 겪고 있는 인간들에게 있다. 흑인 에이즈환자 난민 등을 거쳐 요즘은 음지의 자원봉사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세계 각지 자원봉사자의 모습을 담은 엽서와 포스터 기념티셔츠를 판매한 다음 그 수익금을 자원봉사단체에 기금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언뜻 보면 흔한 기업봉사 활동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역시 베네통답다. 교회의 동성애자 집회에서 자원봉사하는 게이 간호사, 폭력 추방을 위해 활동하는 전 폭력 조직원, 양로원에서 탭댄스 공연을 하는 72세의 할머니 무용수 등 범상치 않은 이웃들을 사진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다. 이처럼 베네통은 광고라는 수단을 통해 매장을 찾지 않는 고객들과도 대화를 나눈다. "전세계인들은 옷 광고를 굳이 안해도 우리 옷을 삽니다"라는 그의 말은 그가 단순한 몽상가가 아닌 치밀한 사업가임을 깨닫게 한다. 베네통 고객의 70% 가량은 10대와 20대다. 그가 무엇보다 독창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창의력이 뛰어난 세계 젊은이들을 모아 '파브리카(라틴어로 워크숍이라는 뜻)'라는 이색 연구소를 세우기도 했다. 25세 이하의 전세계 젊은이들이 모여 영화 TV 음악 디자인 책 컴퓨터 그래픽 등을 마음껏 연구하는 장소다. '젊은이들은 경험이 부족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기업컨설팅회사와의 대화에서보다도 더 많은 전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1935년 이탈리아 트레비소의 폰자노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10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생활고를 덜기 위해 신문팔이를 하는 등 남보다 일찍 사회에 발을 내디뎠다. 어린 나이에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던 베네통 회장은 1955년 막내 동생의 자전거와 자신의 아코디언을 판 돈으로 중고 직조기 한 대를 사들였다. "어느날 시장에 나온 스웨터가 단색제품 일색이라는 사실이 눈에 확 들어오는 거예요. 또 여동생 줄리아나의 뜨개질 솜씨가 뛰어나다는 사실도 떠올랐습니다" 베네통은 회색이나 검정색 청색이 고작이었던 직물업계에 색채와 환상을 도입했고 젊은이들은 난생 처음 보는 컬러 스웨터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때 선보인 컬러 스웨터는 이 회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회사 설립후 30여년 동안 승승장구하던 베네통도 한때 위기를 맞았다. 1990년대 초반 갭 자라 나프나프 등 품질 좋고 가격도 싼 캐주얼 브랜드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베네통 왕국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럽내 매장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베네통 회장은 대전환을 시도했다. 자신의 이름을 붙인 대형 매장을 세워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다. 또 기존 캐주얼 위주의 사업영역을 다각화했다. 스키 용품으로 유명한 노르디카, 인라인스케이트의 원조 롤러브레이드, 전세계 라켓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프린스, 선글라스 킬러룹 등의 회사를 인수했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자유와 도전정신을 소유한 회사인지 여부가 인수의 첫번째 조건이었다. 베네통이 한국에 상륙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제일모직 신한 베네통코리아 등 주인이 여러차례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아직도 캐주얼 브랜드의 대명사 격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이는 위기 때마다 베네통 회장이 '한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을 나타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국은 아주 중요한 시장입니다. 부침이 있기도 했지만 경제위기가 지난 후 두자릿수의 판매신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패션사업가로서 한국 의류산업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일단 자신의 브랜드를 일류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은 해외 시장에 적극적으로 나가 세계 시장에 알리는 겁니다" 지난 92~94년 상원의원을 지내기도 한 그는 올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 초청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구체적인 사업을 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낙후돼 있었지만 북한의 기아퇴치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설현정 기자 sol@hankyung.com ----------------------------------------------------------------- < 약력 > 1935년 이탈리아 트레비소 출생 1965년 베네통그룹 설립 회장 취임 1992~94년 이탈리아 상원의원 역임 1994년 베네통 커뮤니케이션 연구센터 설립 1997년 킬러룹, 롤러브레이드 등 스포츠용품사 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