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증권관련집단소송법 시안을 발표,허위공시·분식회계·주가조작 등을 대상으로 한 집단소송제 도입방침을 밝혔다. 이 집단소송제는 도입효과는 검증되지 않은 반면,그 부작용은 충분히 드러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정부는 다수의 소액투자자 보호와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를 도입취지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집단소송제는 이같은 도입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다.먼저 집단소송제는 투자자 보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이 제도를 시행중인 미국의 경우 소송대리인이나 브로커들만 이익을 챙기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한 연구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피해자들에게 돌아가는 배상액은 피해요구액의 3.2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투자자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또한 집단소송이 제기되면 시장에서는 주식 투매가 일어나고,금융기관이나 거래업체는 거래를 꺼리게 돼 주가는 더욱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따라서 소송제기를 계획해 미리 주식을 내다 판 소수의 주주외에 다수의 소액투자자들은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또다른 도입취지로 내세우는 경영의 투명성 제고는 사외이사제도·회계제도의 개선과 감사기능의 강화를 통해 해결할 사안이지 집단소송제를 통해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집단소송제가 기업투명성 제고와 직결된 문제라면 미국의 코카콜라,AT&T,메릴린치 등 투명성이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기업들이 증권관련 집단소송에 왜 피소됐는가를 설명하기 곤란하다.또한 기업들은 소송에 대한 부담으로 기업공개를 기피하거나 자발적 능동적인 공시를 꺼리게 된다.그리고 집단소송은 제소 사실에 대한 시시비비의 투명한 판단없이 대부분 중간합의로 끝난다.이같은 사실은 오히려 투명성 제고에 역행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투명성 관련 제도를 글로벌 수준 이상으로 강화해 왔으며 이들은 대부분 시행초기 단계이거나 시행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아직은 이같은 제도들이 어떻게 운용되는지를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집단소송제도는 무엇보다 소송인센티브를 노린 변호사 등에 의한 남소(濫訴)의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부는 제소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함으로써 남소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집단소송의 부작용을 막고자 95년,98년 두차례에 걸쳐 제소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했음에도 소송제기 건수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는 남소방지책 마련으로 부작용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유난히 많은 고소·고발 건수와 기업에 경제적 도움을 요구하는 뿌리깊은 관행이 만연한 우리의 현실은 집단소송제 도입에 따른 기업의 피해를 더욱 크게 할 가능성이 높다. 집단소송제는 법리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소송에 참가하겠다는 명시적 의사표시가 없는 피해자에게까지 판결의 효과가 미치도록 하는 것은,개인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여 위헌의 소지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소송고지와 제외신청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하나,정부시안에는 구체적 고지방법이 명확하지 않다. 개인의 권리행사를 위해서는 제외신청이 아니라 오히려 참가신청을 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법원리상 타당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집단소송의 경우처럼,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권리를 임의로 행사하는 것은,소송을 제기하는 자에 의해 경제외적 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이같은 이유로 수차례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집단소송제의 도입을 유보하고 기존의 선정당사자 제도를 보완·활용키로 한 일본의 경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혁은 마땅히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집단소송제는 경제에 미치는 부담이 크고,투명성 제고나 소액투자자 보호라는 취지에도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생산적인 개혁방안으로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지금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검증되지 않은 제도의 도입으로 불확실성을 가중시켜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명의는 암을 다스린다고 해서 부작용이 많은 약을 함부로 쓰지 않는 법이다.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