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채권단의 지원논의 과정을 보면 짜증이 날 정도다. 몇달째 되는 것도 없고,안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올 6월초 외자유치 이후 반도체 값 급락으로 하이닉스의 유동성 문제가 다시 불거진 건 지난 7월 중순.이때부터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을 중심으로 출자전환, 신규 지원 등 갖가지 방안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렇다할 지원책이 확정된 건 없다. 원래 채권은행들은 지난달 14일 3조원을 출자전환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미국 테러사태를 핑계로 핵심인 5천억원 신규 자금 지원은 보류했다. 이후 외환은행은 반도체 값 전망을 더욱 보수적으로 잡아 신규 지원액을 1조원으로 늘리기로 했지만 국민·주택 신한 등 일부 은행들의 반대로 합의를 못 보고 있다. 주요 채권은행 임원들이 수시로 모여 신규 지원방안을 협의하고 있지만 평행선만 긋고 있다. 고민 끝에 외환은행은 출자전환 액수를 3조8천억원으로 늘리고 대신 신규 자금은 5천억원만 우선 지원하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1조원 신규 지원 합의가 어렵자 '숫자놀음'으로 만들어낸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이 안에 대해서도 채권은행들의 이견은 여전하다. 문제는 채권단이 질질 시간을 끄는 동안 하이닉스의 회생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다는 점이다. "외국 채권단이 미국 현지법인에 대해서도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움직임인데다 미국의 마이크론 등 경쟁사들은 반도체 덤핑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또 올해 최소한으로 계획했던 6천억원의 시설투자도 아직 1천억원 밖에 집행하지 못했다.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자 대형 구매처들이 이탈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하이닉스 관계자) 물론 채권단이 수조원을 지원하면서 심사숙고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3개월 정도 따져봤으면 이젠 어느 쪽으로든 결론을 낼 때가 됐다는 게 중론이다. 채권단이 시간을 끈다고 더 뾰족한 대안이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젠 채권단이 결단을 내리라'는 시장의 목소리도 그래서 나온다. 자칫 채권단이 실기(失機)해 손바닥으로 막을 수 있었던 제방의 구멍을 온 몸으로 막아도 안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차병석 금융부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