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의 애독자로서 창간 37돌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지난 수년간 거의 중단없이 한경에 칼럼을 써왔던 기고자로서 한경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 바로 그런 연고가 있기에 대놓고 쓴소리하기 어렵다는 신문사 외ㆍ내근 기자들과 간부들에게 별난 생일 선물을 드리고자 한다. 한경의 문제는 첫째로 종합 일간지인지 경제전문지인지 구분이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종합지에도 경제면이 있고 주식시세표가 나온다. 경제전문지는 경제면이 더 많고 증권시황 기사,기업 관련 기사 등이 더 길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이처럼 평면적 차이는 있으나 수직적 차이,즉 취재 및 분석의 심도격차는 별로 없다. 때로는 종합지의 경제면이 오히려 뉴스원(源) 접근성,신속성,복합적 경제변수간의 연계성을 이해하는 통찰력 등에서 경제지를 앞서는 경우가 있다. 거의 모든 구독자가 종합 일간지를 동시에 구독하고 있다는 사실에 미루어 한경의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의 지면이 아깝다. 참고로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보라. 경제정보를 필요로 하는 독자를 위해 다소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분에 대한 과감한 생략이 필요하다. 물론 '한국적' 현실을 감안하면 종합지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반론이 현재까지는 유효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지는 경제지다워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조만간 반드시 도래할 것이다. 둘째로 기자들 자질에 문제가 있다. 근래 언론계 입사경쟁이 워낙 치열해 당사자들간에는 '고등고시'를 빗대 '언론고시'라고 불리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대학 졸업생중 우수한 인재들이 언론사에 모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수인재를 모으기만 하면 무엇하나. 신문사에 유능한 전문기자로 키우는 제도가 없다. 그러니까 전문분야를 파고드는 기자들이 없다. 기자는 물론 현장을 뛰어 다니며 기사를 쓴다. 그러나 똑같이 다리품을 팔더라도 덤벙덤벙 쓰는 글과 머릿속에서 몇 번 굴려 차분히 쓴 글은 확연히 다르다. 어느 주제나 천편일률적 방법으로 접근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 다룬 뉴스를 끈질기게 파고드는 탐구정신이 없다. 오늘의 뉴스만 있고 어제로부터 도출하는 교훈이나 내일을 밝히는 길잡이가 없다. 때로는 취재차 출입하는 기관과의 유착관계 때문에 기사의 관점이 왜곡 혼미해지는 불미한 일도 있다. 이상은 언론계 전반의 공통적 현상이지만,한경도 예외일 수 없다. 기자의 자질 문제는 해외주재 특파원의 경우에도 드러난다. 정보원(源)에 접근하지 못하고 현지 매체보도의 앵무새 녹음과 현지주재 한국기관 및 교포사회와 어울리는 사교활동 써클을 맴돌다 귀국한다. 귀국하면 해외근무와 무관한 업무에 배치된다. 디지털 시대 웬만한 독자들은 해외뉴스도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런데도 신문사들은 모양 갖추기로 제 구실 못하는 특파원을 파견하고 있다. 셋째로 한경의 불분명한 주체가 문제다. 재벌기업들이 주인이라지만 지분이 잘게 나뉘어 있어 실세 주인이 누군지가 불분명하다. 주인이 분명한 것이 때로는 유리한 경우가 있다. 그러다보니 경영에 바람 잘 날 없고 사장자리를 오래 지탱할 장사가 없다. 신문사가 잘 되려면 최고경영진의 임기가 적어도 10년쯤 돼야 독특하고 색깔있는 언론기관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영진과 기자들이 힘을 모아 신문사를 살리려는 노력이 가시화돼야 한다. 넷째로 컬럼.오피니언란 등에 기고해 본 사람은 누구나 "신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다"는 글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 상의없이 원고에 손을 대는 못된 버릇을 가진 데스크와 기자들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 하기야 기고자 글에도 흠이 있으니 데스크의 편집 덕에 글이 좋아지는 수도 있다. 그러나 개선보다 개악되는 사례가 압도적이다. 가판에 나간 글도 이해관계자들(특히 힘있는 기관,돈 많은 광고주)의 로비에 굴복해 훼손당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거두절미 글의 일부,그것도 글의 백미(白眉)가 잘리기도 하고 긍정과 부정,칭찬과 비판이 뒤바뀌기도 한다. 신문사는 생색을 내겠지만 기고자는 사색이 된다. 다섯째로 대학생등 젊은 독자층의 의견을 들어봤더니 정부정책에 대해 비판기사는 가뭄에 콩나기인 반면 긍정적 해설기사가 홍수를 이루고 대기업 규제완화 등에서 친재벌적 입장이 두드러지고,편집.디자인.색채사용 등에서 뒤진다는 등의 지적이 있었다. 모두 옳은 지적은 아니겠지만 젊은 층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신문사 장래가 밝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대한 문제는 신문사의 미래경영 비전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한경의 높은 위상은 과거 경쟁제한 장벽 등 인위적 요인의 영향이 큰 시대에는 보장받을 수 있었다. 향후 무한 경쟁시대에 있어서도 한경이 더욱내실있게 자라 국내 으뜸의 경제전문지로 자리를 굳히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를 알고 싶다. 한경 가족들은 이같은 나의 고언을 달게 받아들여주기 바란다. 이런 허다한 지적들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매일 아침 나는 한경부터 집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