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이론적 분석과 순수이론의 경험적 응용, 경제성장 이론과 응용, 그리고 무역정책에 통달한 정말로 다재다능한 경제학자(a truly versatile economist)'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의 로렌스 H 오피서 교수(경제학)는 지난 94년 출판된 홍원탁 교수의 논문집 '한국 사람의 시각에서 본 무역과 성장(Trade and Growth:A Korean Perspective)'에 대한 서평에서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홍 교수의 연구 업적은 주로 무역이 경제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돼 있다. 그의 연구 주제를 시기별로 분류하면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초기에 홍 교수는 생산요소의 부존 비율이 무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주로 연구했다. 자본 노동 등 생산요소 부존비율의 차이가 무역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는 '헥셔-올린(Heckscher-Ohlin)' 정리를 한국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경험에 비춰 실증적으로 검증하는 다수의 논문을 저술했다. 두번째 시기에는 앞의 주제의 연장선상에서 무역과 성장이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했다. 수출주도형 성장과 경제의 개방화가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보려 한 것이다. 또 경제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가격변동에 따른 자본차익(capital gain)의 중요성에 주목, 토지소유와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자본이득을 분석하고 토지공개념 논쟁에 참여했다. 다음으로 홍 교수는 한국 정부가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채택한 조세 정책, 금융배급정책 등 각종 경제정책이 한국 경제의 시장 메커니즘을 어떻게 왜곡시켰는가를 분석하는 방향으로 관심 영역을 넓혀 나갔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과 아시아 신흥공업화경제(NICs)의 성장경험을 일반화하는 작업에 착수, 수출주도형 '선진경제 따라잡기(Catching-Up)' 이론을 정립해 왔다. 홍 교수는 지금까지 이들 주제에 관해 50여편의 논문을 저술했다. 최근 들어 홍 교수는 지난 97년말 발생한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겪어온 각종 시련들을 체험하고 NICs가 선진 경제를 따라잡는(catching-up) 과정에서 당면할 수 있는 경제위기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후진 경제가 선진 경제를 따라잡는 과정을 빈곤에 찌든 후진국에서 물질적 풍요가 넘치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turnpike)'를 타는 여행 과정에 비유한다. 후발 개도국이 오늘날 선진국들이 선진 경제에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보다 짧은 시간내에 발전을 이루려면 필연적으로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후발 개도국은 심각한 파란과 위기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우선 출발점에서 고속도로를 타기 위한 진입로도 마련돼 있지 않은데다 최종 목표지에 도착하기 위해 중간에 고속도로를 갈아타는데 필요한 접속도로들도, 또 적시에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필요한 출구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경우 마오쩌둥(毛澤東)이라는 운전수를 만나 '사회주의 국가 건설'로 가는 고속도로를 탈 수 있었고 그후 덩샤오핑(鄧小平)이라는 새 운전수 덕택에 적절한 시기에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라는 고속도로로 갈아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운전수(마오쩌둥.덩샤오핑)들은 단순히 운전만 한게 아니라 고속도로 진입로와 교차로를 일일이 손수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다. 중국이 명실상부한 선진 경제라는 최종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착하기 위해서는 조만간 '민주적인 시장경제'라는 고속도로로 갈아타기 위한 또 다른 운전수가 필요하다고 홍 교수는 생각한다. 반면 구 소련은 레닌과 스탈린이라는 운전수의 등장으로 '중앙 계획적 경제'라는 고속도로에 올라탔지만 불행히도 적절한 시기에 다음 단계의 고속도로로 갈아타지 못했고 결국 혼란과 자멸의 과정을 밟게 됐다고 파악했다. 한국의 경우를 보자. 우리나라는 박정희라는 운전수의 등장으로 '수출 주도형 경제'라는 고속도로를 타게 됐다. 홍 교수는 후진 경제였던 한국이 빠른 시일내에 신흥공업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성장 전략으로 수입대체보다 수출지향 정책을 채택했던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박정희 정부는 노동집약적인 수출제조업을 적극 지원 육성하는 시스템을 제도화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국제 시장에서의 가격.품질 경쟁에 노출됐고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움으로써 고도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홍 교수는 우리 경제가 박정희 정부의 '수출 제일주의' 시대에 형성된 관성탓에 적절한 시점에서 '민주적인 시장 경제'라는 고속도로로 갈아타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수출 확대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시장에 적극적으로, 또 광범위하게 개입했다. 경쟁적인 시장이 형성되지 못했고 정부 간섭과 시장 메커니즘의 조작에 따라 자원 배분은 크게 왜곡됐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본 계층은 주로 선택된 소수,?정치적 영향력이 큰 대기업 집단이었다. 이들은 엄청난 자금을 낮은 비용으로 '배급'받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고 세제상 혜택 등 갖가지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정치권과 관료들에 의한 시장 메커니즘의 심각한 왜곡은 금융회사의 전반적인 부실화와 대규모 기업 도산으로 이어졌고 종국에는 90년대말 외환위기로 치닫게 됐다는 설명이다. 홍 교수가 경제학계에 기여한 가장 큰 공헌은 수출지향적 성장 과정을 중심으로 무역과 경제 발전의 상관관계를 다각도에서 이론적.경험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이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