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념 경제부총리는 '직업이 장관'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동자부 장관,노동부 장관,기획예산처 장관을 거쳐 부총리겸 재경부 장관까지 맡고 있으니 관운 하나는 타고 난 터요, 며칠짜리 장관들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당연히 출세의 비결이 없을 수 없다. 흔히 출세를 하려면 쌍기역(ㄲ) 외글자로 된 몇가지 요소가 필요하다지만 우선 '꾀'에 있어서 진 부총리를 따를 자가 별로 없다. '끈'(연줄)이나 '꿈' '끼' '꼴'에서도 그다지 밀리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어도 언제나 중용되고 있으니 그에게는 분명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을 상대로 맞고함까지 내지를 정도가 됐으니 이제는 '깡'도 갖추게 됐다. 상대를 직접 비난하는 적이 없고 외곽에서부터 파고들며 불리한 논전(論戰)에서는 더듬수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경제부총리를 갖고 있다는 것은 '개혁 원리주의'가 판치는 어지러운 시대엔 차라리 다행스런 일이다. "개혁성이 떨어진다"는 강단으로부터의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경제부총리까지 개혁주의자로 채워졌다면 세상은 더한 쑥대밭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진 부총리를 정의하자면 '현실주의자'다. '원리주의' 깃발이 나부끼는 이 시대에 김대중 대통령이 그를 경제부총리로 기용하고 있는 것은 의외다. 사실 그를 제외하면 한국의 고위직 대부분이 원칙주의자들이다. 원칙주의란 문제의 복잡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항용 내거는 구호라는 점을 참고로 말해둔다. 한번도 책임을 져보지 않았던 사람들과 어설픈 아마추어리즘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는 터에 현실주의자의 경제수장 노릇이란 말처럼 쉽지 않다. 다행스런 것은 진 부총리는 재수가 좋다는 점이다. "1·4분기면 좋아질 것" "3·4분기면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던 그의 주장을 공박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공교롭게도 테러사건이 터져 모든 과실과 허물을 한꺼번에 덮어버린 결과다. 두자리 증가율을 기록한 내년 예산안도 그렇고 정부가 앞장서지 않아도 민간이 재정지출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이 됐으니 내년 대선까지 치러야 하는 경제부총리의 재수 소관으로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또다른 원리주의 그룹인 한국은행을 움직여 기어이 금리를 끌어내리는 그의 방법론은 그를 고용한 김 대통령의 수법과도 닮아있다. 민간 경제연구소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그 자리에 한은 총재를 초청해 금리인하 '결단'을 유도한 대목은 '진념 방법론'의 전형이다. 연구소장들의 입을 빌리는 우회전술이지만 이는 우리 시대가 갖지 못한 온건주의 미덕의 하나다. 노련한 현실주의자 진 부총리가 '원칙주의'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발목을 잡혀 쩔쩔매고 있는 광경은 정말이지 구경거리다. 경제장관 간담회다 당정회의다 해서 기껏 기업규제 완화방침을 발표해놓으면 한 시간도 안돼 "논의한 적 없다. 결정사항은 더욱 없다"는 공정위의 부인 성명이 각 언론사에 날아들지만 부총리는 얼굴에 짜증 한번 드러내지 않는다. 경기마저 침체 일로인 상황에서 경제수장의 구겨진 얼굴을 보지 않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말이다.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시점에서 "경제가 97년 당시처럼 위기다(그러니 추경을 빨리 통과시켜 달라)"는 KDI의 지원사격을 동원하는 것은 아직 그의 꾀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문제는 이 찰나에 다른 장관들이 "무어라? KDI원장이 외환위기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 식으로 공개 성토를 해대니 이는 생각없는 장관들의 엇박자일 것이고…. 한가지 그의 악덕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본인이 직접 임명권자와 더불어 경제팀의 문제를 풀려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번에는 누가 그를 대신해 총대를 메줄 것인가.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