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생명윤리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특히 최근 가장 논란을 빚고 있는 배아줄기세포(胚芽幹細胞:Embryonic Stem Cell)연구를 금지 또는 허용할 것이냐에 대해 첨예한 대치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인간복제를 주장하는 종교단체가 등장,혼란과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우리 정부는 종교계 시민단체 학계 등 인사들로 구성된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마련한 '생명윤리기본법(안)'을 접수해 입법절차를 밟고 있다. 이 법안에 의하면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사실상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미국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과학계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낙태 반대론자들의 여론을 의식한 선별적인 허용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요컨대 이미 만들어진 냉동 배아(60여개로 추정)에서 분리한 줄기세포 연구에 한해 연방정부의 예산지원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 관련학계는 그러한 제한된 조건하에서의 연구 실효성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 조치가 줄기세포 연구를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고 판단한 이 분야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이 영국으로 실험실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영국은 생명공학연구 환경이 가장 좋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복제양 '돌리'를 세계 최초로 탄생시키고 생명공학 전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연구분위기를 만들어 주되 현실적으로 꼭 필요한 규제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정해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아줄기세포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된 수정란에서 분리한 세포주이다. 주사바늘 끝에 묻어있을 정도의 미세한 세포덩어리로 이것이 발달해 여러 가지 신체기능을 하는 체세포로 변환하게 된다. 이 줄기세포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수정란을 파괴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이 낙태와 다를 것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미세한 세포수준의 생명물질과 형체가 있고 활동을 하는,또는 완성된 인간의 생명을 똑같은 잣대로 취급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선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만 실용적인 측면과 균형 잡힌 사고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줄기세포 연구는 여러 가지 난치병의 치료에 응용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당뇨병 백혈병 등의 치료와 손상된 장기세포를 거부반응 없이 재생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 5∼10년 뒤에 이 분야가 산업화되면 연간 3천억달러 이상의 부가가치를 낳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이러한 잠재력이 있는데다 국제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한 연구를 국가가 금지하는 것은 미래와 희망을 포기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손놓고 있다 10여년 뒤 이러한 질병들이 미국이나 영국에서만 완치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 나라의 환자들은 어떻게 될까. 한편 실험실 밖의 생명윤리는 얼마나 확보되고 있는가. 우리 나라는 낙태율 세계최고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모자보건법은 광범위한 낙태 허용사유를 열거해 28주 이내의 태아에 대해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7개월이 넘는 태아의 유린에 대해서는 왜 사회적으로 윤리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것일까. 어디 그 뿐인가. 태아 성감별에 따른 낙태가 은밀히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도 아니다. 실험실의 윤리문제에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낙태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시판허가를 신청해 놓은 사후피임약의 사용은 낙태가 아닌가. 이 사후 피임약은 이미 만들어진 수정란의 자궁내막 착상을 방해하는 작용을 한다. 수정란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임신중절과 다를 바 없다. 진실로 생명윤리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실험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매우 가능성 낮은 잠재적인 위험을 예방하는 것 이상으로 실험실 밖에서 다반사로 저질러지고 있는 생명파괴행위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과 의식개혁을 위한 시민운동이 더 필요한 때다. shbok@mail.kribb.re.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