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하나로통신의 신윤식 사장(65)은 올해 일본에서 '가장 듣기 좋은 별명'을 얻었다. '브로드밴드 영웅'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지난 6월 초고속인터넷 포럼 기조연설자로 초청받아 일본에 갔다. 그때 주최측인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 대표한테 "왜 나를 불렀느냐"고 물었더니 "브로드밴드 영웅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브로드밴드(광대역)란 하나로통신의 사업영역인 초고속인터넷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브로드밴드 영웅'이란 말에는 '초고속인터넷에 관한한 당신이 최고'란 뜻이 담겨 있다. 신 사장은 기조 연설을 통해 "잠자는 NTT가 깨어나면 일본은 초고속인터넷 보급 목표를 1년쯤 앞당겨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가 과당경쟁을 막아야 한다"고 훈수를 해주고 왔다. 한국은 초고속인터넷 1위 국가이다. 가입자수가 6백76만명으로 보급률이 15%에 달한다. 보급률이 4.5%인 2위 캐나다는 물론 2%를 밑도는 미국 일본에 비해서도 훨씬 높다. 물론 초고속인터넷 1위 사업자는 한국통신이다. 그런데도 하나로통신 사장이 '브로드밴드 영웅'이란 말을 듣는 것은 ADSL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신 사장은 지난 97년 하나로통신 창립준비위원장을 맡고 나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제2의 시내전화사업자로 하나로통신을 출범시킨다고 하나 시내전화 보급이 사실상 끝난데다 '공룡' 한국통신과 싸워 살아남을 재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신 사장은 '차별화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기술자들을 3개 팀으로 나눠 해외시장을 조사하게 했다. 그런데 미국팀이 의외의 보고를 했다. '미국에서는 ISDN(종합정보통신망) 대신 ADSL이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전화선을 이용해 초고속으로 정보를 전송할수 있는 기술로 이미 개발이 끝났고 상용화만 남겨놓고 있다고 했다. 신 사장은 "기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듣고 직감적으로 '바로 이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98년 4월 하나로통신은 세계 최초로 ADSL을 상용화했다. 그때까지도 한국통신은 ISDN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ISDNⅡ'를 내세우고 있었다. 하나로통신은 ISDN과 차별화한다는 의미에서 '나(I)는 ADSL'이란 타이틀로 광고를 내보냈다. 가수 유승준이 모델로 나오는 이 광고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ADSL 신청이 쇄도했다. 신 사장이 좋은 말만 듣는 것은 아니다. 그는 최근 '돈키호테'라는 고약한 별명도 얻었다. '경영 스타일이 공격적'이란 뜻도 담겨 있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설쳐댄다'는 비아냥도 섞여 있다. 신 사장은 "돈키호테란 말을 듣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라고 묻자 "글쎄요, 그런다고 하데요"라고 인정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반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좀 그래요. 돈키호테야 허상을 좇는 사람 아닙니까. 내가 언제 그랬습니까. 내가 IMT-2000을 하겠다고 하니까 그런 모양인데 난 처음부터 10%(지분율)만 하겠다고 했어요.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내가 동기식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다들 안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잘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런 말 했던 사람들이 사과해야죠" 신 사장은 말도 그렇지만 경영에서도 거침이 없다. 주위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며 말릴 때도 정면으로 맞서곤 한다. 그는 이런 경영 스타일에 관해 얘기를 꺼내자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충분히 검토해 옳다고 판단했을 때 밀어붙인다는 얘기다. 그는 "통신분야에 발을 들여놓은지 올해로 39년째"라면서 "이 정도면 직관이란 것이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남들과 똑같이 했더라면 하나로통신을 이 정도로 키워 놓지 못했을 것"이라며 튀는 경영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한참동안 설명했다. 물론 신 사장을 '성공한 경영인'으로 단정하기엔 이르다. 하나로통신이 연간 매출보다 많은 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로통신의 올해 예상매출액은 9천억원이고 부채는 1조5천억원이다. 자본금이 1조3천억원이나 돼 부채비율은 1백10%에 불과하지만 재무구조가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까닭에 하나로통신을 부실기업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해 신 사장은 "통신사업에는 초기에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면서 조목조목 반박했다. "통신사업 속성상 서비스 개시 후 3년안에 흑자를 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5조원을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보고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3조5천억원을 투자했어요. 그런데 여건이 좋아져 1조원만 더 투자하면 될 것 같아요. 자금사정이 나쁘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6천억원의 현찰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영업실적만 놓고 보면 지금도 흑자를 내고 있어요. 감가상각 부담이 커서 적자인데 내년 후반께면 흑자로 돌아설 겁니다. 내후년에는 당기순이익도 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 사장은 앞으로 수년간 세계적으로 '브로드밴드 붐'이 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이 2004년말까지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3천만명을 목표로 'e재팬'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고 각국에서 ADSL을 도입하겠다며 신 사장한테 훈수를 요청해 오고 있다. 신 사장은 "ADSL보다 앞선 차세대 초고속인터넷도 개발하고 있긴 하나 유선 초고속인터넷으로는 ADSL이면 충분하다"면서 "유선과 무선의 통합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경영인으로서 목표'를 묻자 주저없이 "이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다만 하나로통신을 세계적인 통신업체로 키우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광현 기자 khkim@hankyung.com --------------------------------------------------------------- [ 약력 ] 1936년생 59년 서울대 사학과 졸업 63년 제1회 행정고시 합격 64년 체신부 사무관으로 공무원 생활 시작 80~88년 전남체신청장 경리국장 우정국장 기획관리실장 88~90년 체신부차관 91~94년 데이콤 사장 94~97년 데이콤 고문 97년~현재 하나로통신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