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기업경기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경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기상황을 조사한 이 결과는 올 3분기 국내 경기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 심각한 건 4분기 경기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기업들이 예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조사 시점이 미국의 테러사태가 일어나기 이전이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테러사태로 인한 향후 충격까지 감안하면 이번 조사결과보다 현실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동안 실낱 같았던 금년하반기 또는 내년초 경기회복 기대감도 완전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불황의 골 깊어져=올 3분기 제조업 BSI는 이미 "빨간 불"이 들어온 국내 경기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전체 업황BSI는 전분기의 85에서 76으로 추락했다. 항목별 BSI를 봐도 어느 것 하나 희망적인 게 없다. 매출 증가율은 전분기 90에서 80,설비투자는 94에서 89,가동률은 91에서 84,채산성은 83에서 78로 모두 내려갔다. 다만 제품재고 BSI는 전분기와 같은 1백13을 기록했다. 기업들의 재고 부담은 그대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생산 투자 채산성 등 기업을 지탱해주는 3대 요소가 모두 곤두박질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테러사태가 터지기 전에 조사한 결과가 이 정도라면 지금 상황은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3분기 경제성장률이 0.5%에 그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은의 3분기 성장률 추정치는 미국 테러사태의 영향을 소폭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3분기 성장률이 실제로는 제로(0)%까지 추락한다면 올 연간 성장률은 당초 예상치 3.8%에 훨씬 못 미치는 2% 안팎에 그칠 수도 있다. 4분기엔 더 나빠=정부와 한은은 올 3분기를 바닥으로 4분기부터는 경기가 회복세를 탈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은 지난6월 경기전망때 분기별 성장률을 1분기 3.7%,2분기 3.3%,3분기 3.0%,4분기 5.1%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4분기에 경기가 조금이라도 회복될 것으로 보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4분기 전망 BSI가 89로 조사돼 기준치 1백은 물론 전분기의 1백3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3분기 보다 4분기 경기가 더 나빠질 것으로 보는 기업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통상 기업들의 실제 실적은 전망 BSI보다 더 나빠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경기가 매우 심각한 국면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는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체감경기 상황을 직시해 획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우고 있다. 조명현 고려대 교수는 "BSI는 기업들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적극 나서 기업들의 경기불안 심리부터 해소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같은 상황에선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수하더라도 과감한 재정확대와 금융완화를 통해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며 "특히 구조조정을 더욱 가속화하고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완화해 기업들이 마음놓고 생산과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정한영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시장에 돈은 풀릴 만큼 풀렸지만 기업으로 흐르지 않고 있다"며 "기업들의 투자마인드를 회복시키는 것과 동시에 시중자금 흐름을 기업 쪽으로 돌릴 수 있는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