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우리 경기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해 현직 장관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전직 장관이었던 이코노미스트가 "내년 2분기가 돼야 한국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의 경기전망들이 하도 빗나가고 있어 이번에는 맞기를 기대해 본다. 경기가 이미 하강하기 시작한 작년 중반까지도 낙관론을 펴다가 모든 경기지표가 하강해 버린 지난 연말에는 올해 2분기,2분기에도 올라가지 않자 3분기,그러다가 4분기로 가더니 지금은 멀찌감치 내년 2분기까지 가야 좋아진다고 한다. 금리를 내려도 투자도 주가도 살지 않는 불확실성의 함정에 빠진 경기를 두고 불확실한 전망은 계속 불확실성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돈 써 가며 불확실한 전망을 하느니 전망하지 않는 것이 확실성을 더 높이는 상황이 돼버렸다. 옛날에는 미국 일본 EU 중 어디가 나쁘면 어디는 좋고 했는데,디지털혁명으로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되어서 그런지 불황도 동시에 온다. 아시아가 경제위기를 맞을 때 미국은 좋아 그나마 탈출구라도 있었는데,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모두 불황국면이니 어디 비빌 언덕도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에 대한 최악의 테러는 우리를 더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반토막이 된 코스닥 주가는 올해 또 반토막이 되더니,미국의 테러 이후 그 반토막도 못 버티고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만 쌓인다. 우리 경제는 순환기적인 경기 저점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지금의 불황은 경쟁력 상실에 의한 구조적인 문제가 본질이다. 구조적인 경쟁력 상실은 뒤로는 가격을 앞세운 중국에 추격 당하고,앞으로는 기술이 앞선 일본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크게 기대고 있는 반도체 가격은 구조적으로 가격이 제로에 수렴하도록 돼 있다. 여기에 미국의 IT산업 불황이 덮친 것이지,미국의 IT산업 불황이 근본 원인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999년과 2000년의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것은 1998년이 -6.7%였기 때문이고,달러표시 GDP 규모는 아직도 1997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봄 어떤 기업인은 "중국 때문에 장사할 게 아무 것도 없다. 지금은 재고도 다 털고 공장을 수출하는데 이것이 끝나면 수출도 줄어들 것이다"고 했고,작년 추석 때 시골에 다녀온 어떤 사람은 "정부에서 IMF가 왔다고 했을 때 몰랐는데 지금이 진짜로 IMF다"라고 했고,지난 겨울에 어떤 카페의 주인은 "매상이 반으로 줄었다. IMF때도 안그랬다"고 했는데 박사도 아니고 경기모델을 돌릴 줄도 모르는 그 사람들의 말들이 올해 들어보니 더 맞아 떨어졌다.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해결된 것을 보고 IMF 위기를 완전히 극복했다더니 이제 와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위기도 아니고, 위기라면 그렇게 쉽게 극복될 수도 없다. 외환위기 이후 상대수치인 성장률이 2년간 반짝했지만 절대적인 경제규모나 수출의 내용을 보면 환율이 오르고 반도체 가격이 좋아 일시적으로 좋아진 것이지,구조적인 어려움은 계속 악화돼 왔다는 것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올해 들어 수출도 줄어들고 원자재와 자본재 수입도 줄어들자 이제 IMF를 극복했다는 말은 사라지고 미국 IT산업에 이유를 돌리고 경기가 언제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들만 계속되고 있다. 세상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를 정부만 몰랐다면 큰 문제이고,알면서도 그랬다면 더 큰 문제다. 몰라서 그랬다면 배우면 되지만,알고도 그랬다면 도리가 없는 일이다. 싱가포르는 새로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8월 이미 '뉴 싱가포르' 10개년 계획까지 나왔는데 이제서야 "IMF보다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한마디했다가 장관들로부터 핏대질 당하고 삿대질 당했으니 ….사실은 하나라서 핏대질 한 사람이나 삿대질 당한 사람 중 어느 한편이 틀린 것은 확실한데 양쪽 모두 중요한 자리에 있으니….초야에 있는 백수에게야 차마 경을 치지 않을 것 같아 나도 한마디 하고 싶다. "IMF는 극복되지도 않았고 지금이 IMF 때보다 더 어렵다"라고. mskang36@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