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철 < 서울대 명예교수 / 경제학 > 미국 중심부에 대한 대형 테러는 한국경제에도 타격을 주었다. 지난 12일 증시는 65포인트 하락이란 사상 초유의 폭락세를 보였고,하루 3천만달러에 달하는 대미 항공화물 수출도 며칠간 전면 중단됐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제국에 대한 수출은 앞으로도 당분간 타격을 받겠지만,증시를 비롯한 여타 경제부문은 진념 부총리 처방대로 우리가 평상심을 회복한다면 곧 테러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한국경제의 대외 의존이 크다고는 하지만 미국에 대한 테러가 한국 주식가격을 12%나 떨어뜨릴 실체적 인과관계는 적다. 우리가 평상심을 되찾는다고 하더라도 대외 경제여건의 악화로 경제정책당국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부경제활동 규모의 확대,시장에 대한 정부규제·개입의 강화를 의미한다. 그 결과 공공·민간부문 간의 불균형은 더욱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양적 측면에서 불가피한 공·사부문 간 불균형 확대는 공공정책의 질적 내용 여하에 따라서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부는 불황대책으로 항상 주택 도로, 기타 사회간접자본 부문에 대한 투자확대 정책을 써왔다. 사회간접자본 설비가 부족한 한국으로서는 사회수요에 근거한 SOC건설은 절대 필요하다. 그러나 불황대책으로서의 SOC건설 확대는 오히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킴으로써 실업과 고물가,즉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해 경기를 말살할 위험성을 갖는다. 그 이유로는 첫째, SOC건설은 자본의 회임기간이 길고, 둘째 인건비 비중이 큼으로써 반드시 투자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경기활성화를 위한 정부지출을 증가시키되,투자 인플레이션을 회피하려면 투자의 회임기간이 없거나 짧은 산업부문이 전략거점으로 활용돼야 한다. 투자 회임기간이 제로인 부문이란,수요와 시설여력은 있지만 운전자금이 부족해 생산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다. 제조업,특히 중소제조업부문이 그런 곳인데 수요와 유휴설비가 모두 있다면 이 부문에 대한 재정융자는 그것이 인건비로 지급돼 구매력화하기 이전에 생산,즉 공급을 추가하므로 투자 인플레이션은 발생할 수 없고,오히려 수급 불균형 해소를 통해 물가하락을 유도한다. 99년 현재 2백51만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4백80조원의 재화생산을 하고 있는 9만1천여개의 제조업체,97년의 9만7천여개에서 6천여개나 문을 닫고 있는 제조업체중에서 이같은 조건을 갖춘 기업이 적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런 업체에 대한 금융지원은 즉시 생산과 물가안정을 유발할 수 있다. 현실적인 초과수요나 시설유휴가 없는 제조업부문도 시설 및 운전자금 융자를 통한 생산확대로 우선 소득과 생산을 증대시켜 잠재수요를 유효수요화함으로써 불황을 극복할 수 있다. 단 이 경우 얼마간의 투자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하므로 융자대상은 투자 회임기간이 짧은 중소제조업에 집중돼야 할 것이다. 중소제조업에 신용공여를 증대시킬 때 두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융자대상기업에 담보능력이 없다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이자율이 턱없이 높다는 것이다. 담보능력이 없는 기업을 지원하려면 정부가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보증기관의 자본금을 크게 확대시켜 과감한 보증활동을 하게 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 및 이들 보증기관은 보증액의 1백% 회수를 목표로 삼는 모양인데,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보증을 해주지 않으면 1백% 망하지만,해주면 50%의 성공률이 예측되는 기업에 대해 보증활동을 하는 것이 본래 취지에 맞는 것이다. 보증기관이 이처럼 보증활동을 강화하면 소비금융으로 흘러 물가만 자극하고 있는 금융기관자금이 생산적 용도에 투입돼 생산증대 물가하락을 촉발할 것이다. 둘째, 2000년도 제조업의 차입금 평균 이자율은 10.5%로 일본의 2.3%(99년)보다 4.6배나 높고 금융비용 대 매출액 비율은 4.7%로 독일의 1.2%보다 3.9배나 크다. 다른 비용이 같더라도 우리는 금융비용에서 경쟁국에 지는데 다른 비용도 우리가 훨씬 불리하다. 금융당국은 통화주의적 편견에서 벗어나 이자율 수준을 지금의 반이하로 내려야 경제가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