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 서울대 통계학 교수 / 자연과학대 학장 > 이공계 대학 지원자의 비율이 날로 감소하는 현상은,장기적으로 볼 때 과학기술계의 위기이며 국가경쟁력을 약하게 하는 국가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이공계 지원자가 95년에는 총지원자의 43.0%이던 것이 98년에 42.4%로 약간 줄었으나,2001년엔 29.5%로 대폭 감소했다. 또 지원자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인력은 의대 치대 한의대 쪽으로 지원하고 있으며,장래의 과학기술력을 좌우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자연과학대 공대 등엔 우수인력 지원이 급감하고 있다. 이공계 대학원에도 입학자가 급감하고 있어 고급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도 공대는 조금 사정이 나은 편이나,기초과학을 하는 자연과학대는 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이처럼 이공계 지원자가 감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첫째,과학기술자들에 대한 사회경제적 처우가 상대적으로 낮은 점을 들 수 있다. 과학기술자들의 낮은 대우를 직접 눈으로 보는 젊은이들이 과학기술자의 길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우리나라 사회 지도층에서 과학자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현상이다. 국회의원 중 5% 정도만이 과학기술계 사람이고,장관 정치인들도 대부분 인문사회계 출신이다. 대기업의 사장들은 극소수만이 과학기술계 사람들이다. 과학의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이공계 학부생이 2학년 이상을 이수하고 85학점 이상을 이수하면,의학교육입문시험(MEET)을 치러 의대에 진학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학전문대학원 추진위원회의 건의문이다. 이 계획이 실행되면 이공계대학 학부과정은 '의대지원자들의 시험준비 대기과정'이 되며 과학연구 분위기를 더욱 훼손,과학의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 확실하다. 의학전문대학원의 추진은 납득이 가나,MEET 시험자격을 학부 4년 졸업자로 제한,학부과정 중에 대학간 또는 대학교간 이동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기초과학 육성을 위해 바람직하다.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은 과학과 기술에 관한 지식이다. 새로운 과학과 기술 지식은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고,수출과 고용을 창출한다. 과학기술 지식의 창출은 과학기술인력의 양성에서부터 시작된다. 장기적으로 세계수준의 독자적 지식창출 능력을 확보하고 우수한 과학자를 다수 배출하는 것이 두뇌강국을 실현하는 길이며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더 늦기 전에 정부는 '과학입국'을 선언하고 과학진흥을 위한 새로운 조치들을 단행해야 한다. 우선 과학자들의 사기 진작 방안을 수립해 실시하고,초·중·고교에서의 과학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과학기술부는 과학진흥을 다루는 주무부처가 돼 과학의 대중화,과학교육의 강화,과학영재의 발굴과 육성 등에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연구논문에서 양적으로는 세계 16위나,질적으로는 세계 60위 수준이라고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진흥에 힘써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세계 10위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과학기술 예산 중 13.6%를 기초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선진국처럼 기초연구 투자비를 20%대로 상향시켜야 한다. 그리고 대학의 연구잠재력을 더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공계 박사의 77%가 대학에 있다. 이 인력을 잘 활용하는 것이 과학입국을 이룩하는 길이 될 것이다. 또 우리나라 인구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 과학기술자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작년에 이공계 박사학위 취득자의 16%가 여성이다. 총연구인력의 10% 미만이 여성이며,대학교수 중 여성인력은 6% 수준이다. 여성 과학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국가 과학수준을 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외국에 주는 기술료는 대략 한달에 8천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이는 주로 미국 독일 일본 등이 기초과학연구를 통해 소유한 특허를 우리나라가 사용하는 비용이다. 외국의 특허기술에 종속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기초과학연구에 더욱 투자해야 한다. 이 투자는 기업이 하기 힘들다. 기초과학 진흥은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정부의 고유기능이다. 기초과학 진흥은 국민에 대한 정부의 신성한 의무라고 볼 수 있다. parksh@plaza.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