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은행에 5억원을 예금하고 있는 이모(60)씨. 그는 요즘 은행에 갈 때마다 은행원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점장이 쫓아 나와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지만 요즘은 지점장도 잘 만날 수 없다. 창구 직원들조차 '오셨어요'란 의례적인 인사치레가 전부다. 이처럼 VIP 고객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왕'으로 모셨던 거액예금주에 대한 은행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 은행에 돈이 부족했던 고금리시대 땐 거액을 맡겨 놓은 예금주들은 귀한 손님이었다. 하지만 초저금리시대가 찾아오면서 이들 거액 예금주에 대한 은행의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 돈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한 지점장은 "큰 돈을 예치하더라도 운용할 데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거액 예금주를 왕으로 모시는 것은 이제 옛 얘기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예금규모를 기준으로 했던 주거래고객 제도를 수익기여도 위주로 바꾸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예금뿐만 아니라 대출, 환전, 카드사용, 공과금납부 등도 고객 평가에 포함시키고 있다. 은행에 대한 실제 수익기여도가 높은 고객에게 수수료 할인, 금리혜택 등 부대서비스를 늘려 주고 있는 것. "대출 고객 가운데 원금은 떼먹지 않으면서도 가끔씩 연체를 해주는 이들이 은행으로선 최고 고객"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은행원도 적지 않다. 과거 금리입찰 등 고금리를 요구하거나 심지어 사례비(?)까지 은근히 원했던 연기금 등 예금 큰손들은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한 지점장은 "돈이 넘쳐나는데 각종 시시콜콜한 대가를 요구하는 거액 기금은 정중히 사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선 지점장의 업무능력 잣대도 변하고 있다. 종전엔 정부단체 등 대형 기금에서 거액 자금을 끌어오는 사람이 유능한 지점장으로 꼽혔었다. 그러나 요즘은 수익기여도가 높은 대출이 평가 1순위 항목이다. S은행 K모 지점장은 "과거엔 대출해준 사례로 접대를 받았으나 이제는 우리가 접대를 해줘야할 형편"이라고 전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