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에서 막 돌아 온 벨기에인들의 표정이 거의 울상이다. 내년 1월부터 실제 생활에서 쓰일 유로화를 위해 국민 스포츠 축구를 포기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최근 벨기에 정부는 전국 지방자치 단체장들에게 보낸 공문을 통해 오는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 체육관련 행사를 피하라고 지시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축구경기에 대해선 예정된 경기도 취소하도록 했다. 이 기간은 전국 은행에 새통화 유로를 공급하는 시기로 전 경찰력을 현금수송차량 경비에 투입해야 하므로 축구경기장 치안 질서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럽연합(EU) 순번 의장국인 벨기에는 올 연말 EU 정상회담 치안유지 부담까지 안고 있다. 지난 6월 스웨덴 예테보리 EU 정상회담과 7월 이탈리아 제노바 G8 정상회담에서 발생한 폭력시위 재연방지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프로축구 시즌 오픈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축구경기 관전을 금지 당한 국민들의 기분은 떨떠름하기만 하다. 체육계와 기업들의 불만도 대단하다. 프로축구연합회는 "스폰서와 TV 방송사에 경기일정을 통보했다며 경기날짜 변경과 예약 취소로 인한 재정 손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국내외 VIP 고객들에게 축구 관전 초대장을 이미 발송한 대기업들은 졸속행정으로 기업 이미지만 떨어지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특히 다음 달 22일로 예정된 경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안데를레흐트 시민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같은 날 열리는 EU 재무장관 회담에 단기금융자본 폐해가 의제로 오름에 따라 경기가 취소됐다. 토빈세(외환거래세) 도입을 촉구하는 반세계화 단체들의 시위가 예상된다며 내무부가 중앙 경찰력 5백명 파견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축구팬들은 "유로화 전환 시기와 EU 의장국 임기는 오래전에 결정된 것인데 이제 와서야 대책 마련에 급급한 정부가 답답하다"고 목청을 높인다. 올 하반기 벨기에는 유럽의 발전을 위해 국민 스포츠 축구를 희생시켜야만 할 것 같다. 파리=강혜구 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