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를 기어이 죽이겠다는 얘긴가" 소시에떼제네랄 등 9개 외국은행이 하이닉스에 4천6백만달러(약 6백억원)의 대출을 만기전 중도상환하라며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선언 위협을 가한 데 대해 채권단 관계자는 분통을 터뜨렸다. 국내 채권단이 하이닉스를 살리기 위해 3조원의 출자전환 등 채무조정안을 마련하고 있는 마당에 외국은행들이 대출회수에 나선 것은 같은 채권자로서 있을 수 없는 자사 이기주의라고 지적했다. 실제 외국은행들의 하이닉스 채권 중도상환 요구는 상식을 벗어난 점이 있다. 이들 은행은 대출계약서상 '하이닉스가 현대계열에서 분리되면 중도상환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들어 중도상환을 요구했다. 문제는 그 조항의 본래 취지다. 대출계약이 맺어진 지난 96년엔 현대전자(지금의 하이닉스반도체)가 든든한 현대그룹에서 분리되면 빚 갚는데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그 조항이 담겼다. 채권보전을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조항의 취지가 완전 상실된 게 사실이다. 하이닉스가 현대계열에 붙어 있으면 오히려 계열사들의 부실로 인해 연쇄적인 재무리스크에 휘말릴 수 있다. 때문에 채권단은 지난 6월 외자유치때 해외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하이닉스의 계열분리를 추진했던 것이다. "채권자에게 유리한 현대계열 분리를 핑계로 중도상환을 요구한 것은 말도 안되는 견강부회(牽强附會)"(채권단 관계자)라는 말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 채권단은 외국은행들이 하이닉스 지원에 참여하지 않을 속셈으로 미리 발을 빼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특히 내달 14일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시행되면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채권도 채무조정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그걸 우려했다는 분석이다. 외국은행들의 하이닉스 채권 중도상환 요구는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이 사실이 보도된 27일 하이닉스 주가는 급락했고 다른 해외채권자들도 채권회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유야 어찌됐건 외국은행들의 자사 이기주의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하이닉스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차병석 금융부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