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은 꾸어 온 돈을 다 갚음으로써 IMF 체제를 공식적으로 졸업했다. 지난 외환위기는 한강의 기적 뒤에 온 커다란 충격으로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우선 그것은 우리에게 경제의 전반적 개혁을 추진하는 계기와 명분을 주었다. 그래서 오히려 잘 됐다는 말까지 나왔고,실제로 그런 계기가 없어 개혁의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일본에 비해 한국 경제의 장래가 더 밝다는 희망론도 나왔다. 지금 와서 보면,특히 현재의 경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당시 의욕에 찬 개혁 추진에 비해 성과가 미약하다는 느낌과 좋은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몇 가지 확실히 변한 것들이 있다. 하나는 폐쇄적 기업집단형 비즈니스 모델의 전반적 퇴각이다. 많은 재벌들이 사라졌으며,4대 기업집단 중 하나였던 현대와 대우는 소그룹 및 독립기업으로 분리되었다. 집단체제를 상대적으로 유지한 다른 그룹들의 경우에도 계열사들의 독립성이 대폭 신장되었다. 또 많은 인재들이 재벌을 떠나 중소벤처 부문으로 이전했고,이에 따라 경제의 모습이 다양화된 것이 확인된다.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부채 경영도 많이 해소됐다. 자 그럼 현 단계의 의미는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동안 우리가 한 것이 위기 해소 차원의 구조조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이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높여 새로운 도약을 해야 한다. 그런데 위기 이후 나타난 여러 변화들을 묶어 새로운 도약을 이루기 위한 좋은 전략이나 청사진이 나오고 있지 않은 것이 문제다. 이같은 모색을 위해 미국 보스턴지역 경제의 재부흥 사례가 참고가 될 것이다. 미국 동부의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지역은 초기 미국 산업의 발흥지로서,특히 1978∼85년에는 소위 매사추세츠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90개월을 넘는 초호황을 창출했다. 그러나 주력산업이던 소형 컴퓨터와 국방산업이 흔들리면서 그 이후 급격히 쇠락,85∼92년 사이에는 제조업 종사자의 3분의 1이 일자리를 잃었다. 반면 이 시기에 서부의 실리콘밸리는 급부상했고,이 지역의 네트워크형 경제의 강점이 부각된 반면,보스턴지역의 전통 대기업 중심의 패쇄적 모델의 단점이 비판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동부지역이 92년 이후 급속히 재부흥함에 따라 그 비결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모아졌다. 이에 대한 가장 재미있는 연구가 MIT의 베스트 교수에 의해 행해졌다. 이 보스턴지역 경제의 변화는 전통 대기업들에 의한 폐쇄적인 산업모델에서 개방적이고 다기업간 통합에 기초한 산업모델로의 전환이다. 즉 전에는 대기업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거대한 군집형 제국을 건설했다면,이제는 기업들이 특정 영역에 집중하고 이들간에 수평적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체제로 바뀐 것이다. 이런 보스턴모델을 한국의 대기업 중심 산업모델을 바꾸는데 그대로 쓸 수는 없겠지만,몇 가지 시사점이 발견된다. 하나는 이런 폐쇄성에서 개방성으로의 변화가 기존 대기업모델의 쇠퇴를 계기로 해서 열렸다는 것이고,기존부문에서 유·무형의 많은 자원들이 풀려나면서 새로운 모색에 쓰여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런 새 모델 경쟁력의 원천이 전통적 생산능력과 IT기술의 결합에 의한 시스템 통합인데,이런 것이 가능했던 계기가 바로 IT의 보급과 확산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스템 통합이란 가령 CAD 등의 IT기술을 생산 및 개발에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디자인의 모듈화,그리고 인텔의 사례와 같이 생산과정과 연구개발이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생산과 개발의 통합까지 다양한 면에서 포착된다. 이런 통합의 진전에 따라 전자산업은 종래와 같이 하나의 별개 산업이 아니라,모든 산업에 들어가는 구성요소처럼 되고 있다. 매사추세츠지역의 산업 전환과 비교해 볼 때 한국에서 대기업 집단형 체제의 쇠퇴와 계열기업의 독립성 강화,IT의 급속한 보급과 다양한 기술형 중소기업 발흥 등은 한국에서도 'focus & network' 전략에 기초한 새로운 산업 시스템의 형성이 가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klee1012@plaza.sn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