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 디지털경제硏 이사장 > 연초부터 크게 오르기 시작한 전세금이 7월에는 비수기임에도 1.5%나 상승해 1986년 주택은행이 조사를 시작한 이래 15년만에 최고로 올랐다. 서민주택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데다가 저금리의 영향으로 있던 전세물량도 줄어들었는데 무더기로 추진되고 있는 재개발·재건축사업 때문에 발생한 전세수요가 겹쳤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는 대한주택공사가 지은 15년 정도 된 멀쩡한 12층 짜리 아파트를 헐고 재건축을 하고 있고,여기 저기의 멀쩡한 아파트들에 재건축허가를 축하하는 긴 현수막을 드리우고 있다. 재건축하는 사람들이야 집값이 올라 좋을지 모르지만,이 바람에 전세금이 올라 집 없는 서민들은 새우등 터진다. 건설경기를 살리고 집 있는 사람의 재산을 늘려준다고 집 없는 사람을 당하게 하는 것은 죄다. 우리나라의 부동산가격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절대적인 가격수준도 높을 뿐 아니라 상대적인 가격도 너무 높다. GDP의 10배까지 치솟았던 땅값이 최근에는 3∼4배 수준으로 내렸지만,땅값과 GDP가 1대1 정도인 선진국에 비해 아직도 터무니없이 높다. 높은 부동산가격은 노동자들의 주거비용을 높여 임금을 상승시키고 기업의 대외경쟁력을 떨어뜨린다. 형제들이 일해서 얻은 소득을 집 있는 사람들이 높은 전세나 월세로 앗아가는 만큼 소득불균형은 심해지고 임금인상 투쟁은 과격해 진다. 임금과 땅값이 경쟁국에 비해 높으면 수출은 어려워지고 기업은 도산하게 된다. 선진국에서 서민주택공급과 대중교통은 지방정부가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주로 민간에게 맡기고,선진국에서는 민간이 맡고 있는 담배나 수도를 정부가 쥐고 있으니 일이 꼬일 수밖에 없다. 집마다 창문의 규격이 다르고,아파트마다 평수가 다르고,아파트를 건설하면 투기꾼부터 먼저 설치는 민간주도의 주택시장은 질서도 계획도 없다. 멀쩡한 아파트를 헐고 새로 지어도 비용이 빠지고 남는다면 봉이 김선달식 행정이다. 서울에 오면 가장 무서운 것이 집세이다. 집 한 채 마련하기 위해 저축을 하다 보면 집값이 먼저 알고 올라간다. 융자를 받아서 집을 살라치면 어지간한 월급으로는 융자금 갚기도 힘겹다. 월급에 비해 집세와 집값이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서울은 너무 비싸다. 이렇게 집 있는 사람이 매기는 '입시세(入市稅)'와 '입택세(入宅稅)'를 집 없는 사람은 톡톡히 물어야 하고,집을 늘릴 때는 멀쩡한 아파트를 헐고 재건축한 비용까지 물어야 한다. 나라가 거두는 세금이야 모두를 위해 쓰이니 힘들어도 기꺼이 내지만,집 있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쓰는 '입시세'와 '입택세'는 아무래도 억울하고 '빈곤의 악순환'의 족쇄다. 경제성장은 2%대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데 전세금이 계속 오르자,서민주택 공급은 제대로 하지 않고 아파트 재건축을 마구 허용하던 정부가 지난 주초,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해 전세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임대주택을 20만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세금이 올랐다고 자금 지원을 확대하고,갑자기 임대주택을 늘리는 대증요법은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다. 선진국과 같이 서민주택문제는 계획적이고 제도적으로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지방정부는 책임지고 서민주택을 공급하고,임대주택을 직접 짓고 관리도 해야 한다. 주택과 자재의 규격화로 주택건설비용도 근본적으로 절감시켜야 한다. 그림의 떡같이 바라만 보고 논쟁만 계속하고 있는 그린벨트는 '분노의 땅'일 뿐이다. 일정고도 이하의 그린벨트는 환경을 살리면서 임대주택을 개발하면 집 없는 사람도 좋고 땅 가진 사람도 좋다. 멀쩡한 아파트도 재건축해 돈을 벌게 하고,전세금을 올리는 정책은 즉시 중지해야 한다. 임금을 안정시키고 대외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땅값은 GDP와 1대1 정도로 떨어져야 한다. 서민들의 주거가 안정돼야 임금도 경제도 안정될 수 있다. 도둑이야 있는 자를 뺏고 문단속을 잘하면 막을 수도 있지만, 집값 오르는 것은 없는 자를 뺏고 문을 걸어 잠가도 막을 수 없다. 도둑이야 경찰에 신고하면 잡을 수도 있지만,집값 오르는 것은 신고할 데도 없고 잡는 사람도 없다. 집 없는 사람에게는 집값 오르는 게 도둑보다 무섭다. mskang36@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