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경 <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장prangel@sac.or.kr > 처음 만난 사람들은 "공연을 마음대로 볼 수 있어 좋겠다"는 부러움 섞인 말을 자주 건넨다. 사실 언제나 공연을 볼 수 있고 이를 포함한 용역의 대가로 월급을 받고 있지만 '마음대로'공연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객석에 앉으면 조명이 어두워지기도 전에 즐기는 '마음'은 사라지고 '계산'과 '염려'만 남는다. 자신이 기획한 공연이면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극장에서 공연하는 작품,외국극장에서 보는 작품,심지어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에서도 작품 자체에 빨려들기가 쉽지 않다. 대신 계산하고 염려하고 판단하려고 한다. 기획자의 본분을 망각한 공연 보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필자의 직업적인 관람 태도를 무색하게 한 것은 어린이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였다. 연극이 시작되고 백설공주가 계모에게 속아 정신을 잃는 대목까지는 기획자의 계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세 번씩이나 계모의 책략에 속아 넘어가 바보스럽게까지 보이는 백설공주와 위기마다 온몸을 바쳐 공주를 구해 내려는 사랑에 빠진 벙어리 난쟁이 반달이의 등장에도 '연극적 장치가 세련됐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독사과에 쓰러진 백설공주를 위해 난쟁이 반달이가 언어와 신체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왕자를 백마에 태워 공주 앞에 데려다 놓는 순간부터 기획자의 '입장'은 사라졌다. "왕자님이 왔는데,내가 그토록 공주님께 모셔오고 싶어하던 그 왕자님이 왔는데,내 마음이 왜 이러지…"하며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난쟁이의 마음과 함께 했다. 공주가 깨어나면 표현하려고 했던 난쟁이의 수줍은 몸짓,사랑고백이 왕자의 씩씩한 청혼에 파묻힐 때 필자는 주책없이 그만 눈물 몇 방울을 흘리고 말았다. 공주의 행복을 빌며 조용히 죽어간 난쟁이 반달이가 안개꽃 속에 파묻혀 환하게 웃고 있는 마지막 신이 채 끝나기 전에 극장을 나왔다. 관객들이 나오기 전에 나의 '마음'을 접고 '계산'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공연에 만족한 관객들의 표정을 보는 것도 기분좋은 일이지만 오늘만큼은 '마음대로 공연을 보았기 때문에'가슴이 더욱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