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만 잔뜩 지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엄청난 돈을 쓰겠다고 한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그 돈이 어디서 생긴 걸까'하고 의심하게 된다. 세금을 더 거두는 것도 아니고 국채발행으로 빚을 더 내겠다는 것도 아닌데 정부가 연말까지 10조원을 더 쓰겠다니 그 비법에 궁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경기활성화 방안으로 내놓은 '10조원 재정추가투입'이 바로 그런 사안이다. 더구나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나마 새 돈을 투입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우선 10조원의 절반인 5조5백여억원은 정기국회에 상정하기로 이미 확정돼 있던 추경예산이다. 불용·이월예산을 5조원 정도 줄여 재정의 추가지출 효과를 내겠다는 것도 실현 가능성이 매우 의심스런,그래서 거의 립서비스에 그칠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불용이나 이월을 내고싶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당국자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는 터다. 물론 경기를 살려내라는 아우성을 들어야 하는 재정경제부의 고민도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당장 내년부터 공적자금 원리금까지 상환해야 하는 터에 앞뒤 가리지 않고 적자재정을 편성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재정운용과 관련해 정부가 말을 바꾼 것이 벌써 한두번이 아니다. 사업예산의 80%를 앞당겨 집행한다는 약속도 온데간데 없는 터다. 항차 추가된 10조원이 숫자의 교묘한 조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국민들은 정부를 어떻게 믿을 것인가. '경제는 어차피 심리전'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심리전이 통하려면 경제주체 간에 기본적인 신뢰가 있어야 한다. 국민과 기업이 바라는 것도 그럴듯한 말이나 포장이 아닐 것이다. 정부는 지난 상반기에만도 13조원의 재정흑자를 냈다. 정부가 민간부문으로부터 그만큼 돈을 빨아들였고 따라서 재정의 경기기능으로 따지자면 역기능이 더욱 컸다고 봐야 할게다. 사정이 이런 터에 숫자의 마술로 10조원이 아닌 20조원을 만들어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책이 없다면 차라리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경제부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