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골프 금지령이 떨어지면 민간인들의 부킹은 한결 쉬워진다. 골프장 예약이 다시 어려워진 것을 보면 지난 가뭄때 내려졌던 공무원 골프 금지령이 슬그머니 해제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심각한 주제들이 한둘이 아닌 터에 굳이 골프 얘기를 꺼내는 것은 역시 골프를 끌어와 이야기를 해야 우리의 고위 경제관료들이 쉽게 이해하지 않을까 해서다. 기자가 알기로 대부분의 고위 경제관료들은 골프를 아주 잘 친다. 집중력과 끈기가 남다르기도 하거니와 나라 돈으로 유학도 가고 해외 주재관을 역임하면서 하루에 두세 라운드 씩의 힘든 '전지훈련'도 감내한 결과다. 골프가 귀하던 시절에는 한국서 출장 나온 높은 분들의 캐디백까지 메고 부지런히 강제출장을 돌기도 했으니 고위 공무원들이 골프를 잘치는 데는 다 그만한 내력이 있다. 평소에는 곧잘 치던 골프가 잘 안되는 데는 무려 1백8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주말 골퍼들이 게임 시작전에 으레 하는 말은 "간밤에 불가피하게 술을 많이 마셔 지금도 작취미성"이라는 변명이다. "도저히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두번째 자리 정도에 오를 만한 이유다. "아무래도 골프채?"는 엄살이 심한 타입의 사람이 거론하는 세번째 이유. "요새는 영 슬럼프"라고 말하는 골퍼는 자신의 실력을 언제나 과대평가하는 사람에 속할테지만 "간밤에 안방 서비스가 과했나"라고 둘러 댄다면 동반자들은 한바탕 웃어제칠 수도 있다. 골프가 안되는 이유는 이렇게 하나씩 늘어나 결국에는 1백8번째에 이르고서야 끝이 난다. 온갖 이유가 다 끝나고 마지막 남는 1백8번째 이유는 '이상하게' 안맞는 것이다. 경제가 안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골프가 안되는 이유가 1백8가지에 이르는 터에 경제가 안되는 것에는 아마도 1천8백가지도 더 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요즘 거론되는 가장 다급한 원인은 반도체 등 IT(정보기술)산업의 침체다. 선진국 경기부진은 두번째 원인쯤 될 것이고,그에 따른 수출부진은 당연히 세번째 자리를 잡을 것이다. 투자와 수입이 격감하는 체인현상도 뒤따른다. 게임은 복잡할수록 재미있다지만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탓에 더욱 꼬여가는 것이 또한 경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오로지 '구조조정'이 미진한데서 원인을 찾고 다른 사람은 외부여건의 악화가 의외의 타격을 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보다 심각한 원인이라면 산업경쟁력 약화를 들 수 있겠는데 골프로 따지면 연습부족에다 실력부족이 겹친 꼴이다. 진념 부총리는 요즘 1백7번째쯤 되는 원인을 하나더 찾아낸 모양이다. "언론들이 경제가 무너질 듯이 보도하고 있다"는 그의 푸념은 '경제도 심리'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전혀 틀린 지적은 아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한보 기아로 이어지는 대기업 부도 와중에 "시장경제라는 말만 나오면 '이상하게' 문제가 터진다"고 푸념했다지만 '이상하게'식의 반응이 되풀이되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골프가 안되는 데 '이상한' 이유가 있을리 없듯이 경제가 안되는 것도 별다른 원인이 있을리 없다. 기업과 기업가를 백안시하고,온갖 규제를 그물처럼 쳐놓으며,각종 반시장적 개혁 조치가 남발되는 와중에 경제가 잘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세무조사 등으로 어깨에 잔뜩 힘을 주면서 거리가 나길 기대하고,포퓰리즘의 좌편향 스탠스로 페어웨이에 안착하기를 기대한대서야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진짜 원인은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엉뚱한데서 원인을 찾는다면 결국에는 "이상하게…"밖엔 다른 이유가 없다. '이상하게'가 거듭되다 보면 급기야는 1백9번째 이유,즉 동반자를 비난하는데까지 이르게 된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