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한국대사관의 고위관료 한명이 5일 황급히 서울로 돌아갔다.귀국명령을 받은지 사흘만의 일이었다.2일 아침 서울에서 온 전문을 받은 뒤 이 관료는 짐꾸리느라 혼쭐이 났다. 그동안 상대했던 일본 공무원과 지인들에게는 전화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이 관료가 일본서 일한 기간은 4년6개월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가깝게 지냈던 일본 관료들과 학자, 교포 실업인의 이름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제대로 인사 한번 나누지 못한 채 바다를 건넜다. 일본은 한국인 시각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면이 적지 않다. 스피드와 능률을 앞세우는 한국과 달리 전근대적이고 허례허식처럼 보이는 관행이 곳곳에 남아 있다. 거의 모든 일본인이 한 여름철에 땀을 뻘뻘 흘리며 안부 편지나 엽서를 띄우는 문화가 우선 대표적이다.무엇이든 꼬치꼬치 확인하고 일을 처리하는 업무 스타일에선 답답함마저 느껴진다.자신의 일이 바뀌거나 자리를 옮길 때에는 엽서 한장으로라도 신상 변화를 알리고 후임자를 소개한다. 이렇게 하지 않을 경우 그 사람은 '상식없는 자'란 평가가 내려지고 올바른 대접을 받기 어렵다.오랜 사회적 전통이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룰'이다. 주일 대사관에서는 지난 2월 대폭적인 물갈이가 있었다. 경제공사를 비롯한 경제외교의 첨병들이 상당수 새얼굴로 바뀌었다. 불과 6개월이 지난 이달 초에도 또 자리이동이 있었다. 일본 공무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히자 마자 새 업무를 맡게 된 사람도 있었다. 일본 공무원을 상대해 본 한국 외교관들 중에는 그들의 치밀함과 전문지식에 혀를 내두르는 이들이 많다. 일본 공무원들의 파워는 물론 개인적 노력에서 나온다. 하지만 몸에 밴 기록문화와 이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빈틈 없는 업무 인수인계도 파워의 비결중 하나다. "답답했습니다. 수년 전 대사관의 한 간부가 일본 경제부처 국장급과 실무 이야기를 나누는데 5분을 넘기지 못하더라구요. 만남을 주선한 내가 민망스럽기도 했고요…" 한국에 돌아가고 없는 또 한명의 관료가 남긴 경험담 한 토막은 대일 경제외교에서 연속성과 전문성이 얼마나 홀대받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