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IT(정보통신) 기업의 한국법인들이 미국의 PC 및 통신업계에서 시작된 "감원 태풍"의 영향권에 들고 있다. 강도는 미국 본토보다 약하지만 회사마다 인원축소 채용동결 임금조정 등을 실시했거나 준비중이다. 국내 다국적 IT회사 관계자는 "한국법인에 대한 인원축소 방침은 아직 통보받지 않았지만 본사가 대규모 감원을 발표해 놓은 상태라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보고 초조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프린터와 컴퓨터 제조회사인 한국HP는 지난 상반기에 국내 PC 수요가 21% 감소하는 등 경영환경이 악화됨에 따라 전 임직원에게 3.4분기동안 급여의 10%를 반납하거나 5%만 반납하고 휴가를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비절감을 위해 대량 감원에 나선 미국 본사와 보조를 맞추기로 한 것이다. 시스코시스템스코리아도 올들어 이미 80여명을 줄였다. 국내 노동시장의 특성상 인위적인 해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계약직 사원과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감원했다. 또 직급을 간소화해 임금 부담도 대폭 덜었다. 1백여명을 스카우트하면서 국내 최고 임금을 보장해 주는 한편 임원들에게는 본사의 주식을 스톡옵션으로 나눠 줬던 작년의 잔치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미국에 있는 본사 시스코시스템스는 7월로 끝나는 분기실적에서 주당순익(EPS)이 2센트에 머물러 작년의 16센트에 비해 급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루슨트코리아도 계약직 사원과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루슨트는 또 상반기에 산하 벨연구소의 한국 지소를 낼 계획이었으나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루슨트코리아는 벨연구소 한국지소에 1백여명의 고급 연구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작년에 발표했으나 현재 20명만 뽑은 상태에서 채용을 중단했다. 광통신장비업체인 노텔코리아는 지난해 1백명이었던 인원을 올해 안에 2백명으로 늘릴 계획이었지만 1백10명에서 더 이상 충원하지 않기로 했다. SK텔레콤에 대한 IMT2000 서비스용 장비 공급권을 따내는게 시급한 만큼 경영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감원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게 회사측의 입장이다. 그러나 캐나다 본사(노텔네트웍스)가 2.4분기에 1백94억달러의 적자를 내 7천명을 추가로 감원하겠다고 밝힌 상태라 직원들은 앉은 자리가 편하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 다국적 IT회사들은 직원들의 정신 무장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스토리지장비업체로 10년만에 7백배나 주가가 뛰어 화제를 모았던 EMC의 한국법인인 EMC코리아는 분기마다 마케팅과 영업사원의 실적을 체크해 목표를 달성한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으로 나누고 있다. 실적이 좋으면 해외여행 등으로 보상해 주고 저조하면 정신무장 워크숍에 참가시킨다. 국내 IT 업계의 한파는 하반기에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95년부터 쌓인 IT 분야의 과잉투자 거품이 최소한 올해는 넘겨야 꺼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