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철평 < 한국무역대리점협회 회장chin@nkt.co.kr > 얼마 전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 세 딸을 한꺼번에 잃었던 정광진 변호사의 최근 동정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벌써 6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의 부실이 불러왔던 가슴아픈 일들의 상징처럼 각인돼 있는 그 사건에 묻혀 있는 또 다른 일면을 보게 되어 새로운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와우아파트 붕괴사고,성수대교 붕괴사고 등 개발기의 여러 사고를 경험하면서 피해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이 겪은 많은 고통의 사례를 보아왔다. 그러나 정 변호사의 이야기는 과연 우리들이 어떠한 자세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혼돈에 대처해야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한다. 옛말에도 '부모가 죽으면 산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 속에 묻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자식의 죽음은 천붕(天崩)보다 더 큰 슬픔이다. 정 변호사 부부는 젊은 나이에 먼저 간 자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사고 이후 장학재단을 설립해 장학금을 장애인들을 위해 출연했다. 맏딸은 시각장애인으로 어릴 때부터 헬런 켈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자식을 앗아간 무정한 사회에 목소리 높여 불평하고 보상을 소리치기보다 희생된 자식의 뜻을 진정으로 기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사회의 부실한 한 부분을 메우려는 조용하고 고귀한 노력을 솔선수범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최근 병역비리사건 등을 접하면서 그 뒤에 숨어 있는 부모들의 잘못된 자식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혼돈된 시류에 편승해 부정한 방법으로 자식의 영달과 안락만을 추구하기 위해 병역의무를 면해 주려는 노력은 지탄받을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정 변호사처럼 선과 사랑으로 가정을 지키고,자신에게 닥친 고통까지도 의연히 극복하며 사회에 봉사하고,작고 조용한 실천으로 빛이 되는 의인들이 곳곳에 있다. 때문에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헬런 켈러를 꿈꿨던 맏딸의 뜻을 기리는 정 변호사의 노력이 사회 곳곳에 메아리쳐 우리 가정과 사회를 보다 맑고 깨끗하게 하고 건강하게 지키는 등대가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