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의 유동성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달 DR(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해 1조6천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지만 계속되는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당초 세웠던 자금수급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채권단이 응급처치에 나서 추가적인 이자감면 등을 추진키로 했지만 채권단 지원이 정상화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하이닉스의 운명은 반도체 값 회복에 달렸다는 지적이 많다. ◇얼마나 어렵나=당초 하이닉스는 반도체 판매단가를 64메가 D램 환산 기준으로 개당 2.65달러로 보고 자금조달 등 모든 계획을 짰다. 당시 시세에 비해 보수적으로 계산했는데도 불구하고 반도체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강곡선을 그렸다. 현재 하이닉스의 D램 평균 판매가격은 1.6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닉스는 지난 2·4분기에 1조2천7백7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이 추세라면 금년 손실 규모는 2조9천억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메릴린치증권)이다. 박종섭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은 지난 19일 기업설명회에서 반도체가격 하락으로 인해 올해 현금 흐름에 1조3천억~1조4천억원 가량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실토했다. 하이닉스와 채권단은 어쨌든 올해는 그럭저럭 현금 흐름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 약 9천여억원은 대부분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와 채권은행간 협약에 따라 상환계획이 마련돼 있다. 현재 확보한 현금유동성은 6천6백억원 수준.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1조원에서 6천억~8천억원 수준으로 줄이고 LCD와 통신부문,투자유가증권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일단 올해 자금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으리라는 주장이다. 중국계와 협상 중인 LCD부문은 4억~7억달러,현대자동차와 협상 중인 현대오토넷은 1억달러 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작 문제는 내년"이라는 게 채권단과 하이닉스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반도체 시장이 장기간 침체될 경우에 대비한 방안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는 것. 내년에는 2조2천억원 가량의 현금이 순유입돼야 부채도 일정부분 상환하고 정상적인 사업을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채권단은 보고 있다. ◇채권단 지원=채권단은 일단 하이닉스의 현금유동성을 보강해주는 비상대책을 마련했다. 우선 하이닉스가 자구노력으로 올해 말까지 1조원 정도의 현금을 확보토록 할 계획이다. 또 차입금 금리감면을 통해 이자비용을 줄여줄 방침이다. 필요할 경우 일부 차입금을 출자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채권단 추가 지원이 간단치만은 않다. 지난달 외자유치를 전제로 채권단은 CB(전환사채) 1조원 인수와 대출 만기연장 등 총 5조1천억원을 지원했다. 두달도 안돼 추가 지원을 해준다는 건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때문에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도 새 돈을 투입하기보다는 기존 차입금 이자를 줄여주는 방향으로 아이디어를 짜낸 것이다. 궁극적으론 반도체 값이 회복돼야 겠지만 당장은 채권단이 얼마나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지가 관건이다. 전병서 대우증권 조사팀장은 "어차피 하이닉스를 살리기로 한 만큼 채권단이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 유동성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택·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