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랭킹 1위인 삼성이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현금확보와 투자축소를 골자로 하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는 것은 우리경제의 첨병인 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어느정도인지 실감케 한다. 삼성은 주력기업인 삼성전자의 지난 2분기 실적이 크게 악화돼 어느정도 경영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한 측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국내에서는 가장 견실하다는 회사가 이처럼 회장의 진두지휘아래 계열사 전반에 걸쳐 특단의 구조조정에 착수한 것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삼성의 구조조정은 올해 시설투자규모를 당초의 목표액인 8조5천억원에서 6조원정도로 줄이고 현금확보 인력조정 경비절감 등 감량경영의 모든 수단을 동원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뿐만 아니라 LG SK 포항제철 등 간판급 대기업들이 잇달아 강도높은 살빼기에 돌입함으로써 바야흐로 재계는 IMF사태 직후와 비슷한 2차 구조조정의 태풍에 휩싸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대표적 기업들이 이처럼 서둘러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대외적으로 기대했던 미국과 일본의 경기회복 가능성이 불투명해지고 수출에 목을 매고 있는 우리의 무역환경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데다 정치불안과 노사문제 등이 겹쳐 이대로 가다가는 기업도 국가경제도 파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신속하고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투자축소는 기업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앗아갈 뿐더러 경기침체를 장기화·고착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후발 개도국으로 여겼던 중국이 전기 전자에서 우리를 추월하고 정보통신분야까지 위협하는 이유를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는 최근 몇년 사이 중국이 신기술 도입과 외자 유치를 통해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한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이라고 하면 흔히 발등의 불을 끄는데만 급급,투자축소와 감원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부실을 털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새로운 가치창출을 위한 투자를 소홀히 해선 안된다. 삼성이 반도체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신규투자를 억제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선택으로 보여지지만 대신 성장·수익성이 있는 신(新)사업영역에 투자와 경영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할줄 아는 기업이라면 마땅히 '멀리 보는 구조조정'에도 신경을 써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