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최근 일어난 사건을 놓고 그 회사 내부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부장급 이상 노장층으로 올라가면 '그럴 수도 있다'며 무덤덤한 반면 과장급 이하 소장층으로 내려가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한다. 사연은 이렇다. 이 백화점 1층 잡화매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 화장품 업체들이 매출이 부진하니 점포에서 나가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이들 업체가 나갈 경우의 매출감소와 체면손상을 우려한 백화점측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이 점포에 들어온 국내 패션업체들에 화장품 매출을 올려주라고 요구한 것. 이를 거절할 경우 불이익을 걱정한 입점업체들이 자사 직원들을 동원,외제 화장품 수백만원어치를 한꺼번에 사주었다. 덕분에 외제 화장품 브랜드의 철수 움직임은 누그러졌다. 이 일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날 내부 임직원들의 반응은 갖가지로 나타났다. 모 이사는 "그 정도는 다른 백화점에서도 얼마든지 있는 일이에요.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라며 별것 아니라고 치부한다. 반면 K과장은 분통을 터뜨린다. "어떤 사람 아이디어인줄은 몰라도 구석기시대 사고방식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직원 모두가 도매금으로 넘어가요" 같은 날 유럽계 모 유통기업은 신라호텔에서 '파트너스 컨퍼런스'란 행사를 열었다. 2억원 가까이 들어간 이 행사는 오후 6시부터 약 4시간동안 진행됐다. 주최측 임직원들이 1백여개의 테이블을 돌며 자신들의 비전을 설명하고 와인 잔을 부딪치는 장면도 목격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협력회사는 강요의 대상의 아니라 파트너라는 생각이 회사 정책의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이 두가지 사례를 놓고 전문가들의 해석은 대체로 일치한다. 전자는 오너의 패권주의와 제로섬(zero-sum) 사고방식이 기업문화에 스며든 방증으로 해석된다는 지적이다. 후자는 후발주자로서 협력업체에 대한 겸손과 함께 상생(相生)의 철학을 실천하는 작은 몸짓으로 풀이된다는 평가다. 사세가 우월함을 과시하거나 헤게모니 확인에 연연하는 것은 결코 보기 좋은 모습이 못된다. 유통업체란 모름지기 협력업체의 소중함을 알아야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법이다. 강창동 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