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양 < KAIST 테크노 경영대학원 정책학 교수 > 오랜 가뭄 끝에 장마철이 왔는데도 우리 경제는 점점 말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을 떨치기 어렵다. 간판급 기업들까지도 감원과 생산공장의 해외 이전에 나서는 것을 보면 상황이 심상치 않은 모양이다. 그동안 요란했던 경제 구조조정의 외침도 시들해지고 있다. 정치는 언론사 세무조사,금강산 관광사업 등에 매달려 경제문제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다. 우리 경제는 수출 주력제품인 IT(정보기술)제품의 급속한 둔화와 함께 기세가 꺾여 미국 경기가 하루 빨리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딱한 신세가 된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 하반기 미국 경기가 살아나며,우리경제도 덩달아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적 주장이 있는가 하면 본격 회복을 위해 서서히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다음 두가지 점 때문에 '안이한 자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미국경제가 빨리,그것도 우리경제에 힘을 불어넣을 만큼 크게 회복될 것인가의 문제고 둘째 우리가 세계경제의 밑바닥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제간의 기술격차(technological divide)현상'을 간파하고 이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첫째는 미국의 경기변동을 종래의 경기순환이론으로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종래의 경기순환은 '경기 확장→물가 상승→금리 인상→투자 및 소비수요 감소→재고 증가→경기 둔화'로 이어지는 소위 '금리 조정을 통한 재고 조정과정'이 그 핵심이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경제는 과거와 그 본질이 크게 다른 '고도의 기술주도형 경제'다. 물가상승 없이 경기확장이 10년이나 지속됐고 수차례에 걸친 금리 조정의 효과도 아직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는 경기순환이 종래와 같은 금리 또는 금융적 조정의 문제라기보다 그 본질에 기술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으며 기술주기(technology cycle)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지난 10년에 걸친 미국 경제의 경이적인 성장은 간단히 말해 IT라는 새로운 기술기회(technological opportunity)가 쏟아져 엄청난 투자와 이에 따른 소비가 '정보화'라는 이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경기하락은 IT부문의 기술기회가 감소함에 따라 기업투자가 줄고 이미 IT제품을 많이 보유한 소비자들의 추가적인 소비가 둔화되는 소위'소비자 피로현상(consumer fatigue)'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미국 경제는 그 주도기술인 IT부문의 기술순환적 조정과정을 겪고 있으며 본격적인 회복을 위해서는 종래의 단순한 재고조정 과정보다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는 우리 경제가 이미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는 각 국가 경제간의 기술격차 현상에 의해 기술적으로 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세계 각국이 이념적 격차(ideological divide)에 의해 나뉘었다면 지금은 기술혁신 및 신기술 흡수능력 차이에 따라 지속 성장을 누리는 경제와 점차 도태되는 경제로 양분되는 이른바 '기술격차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근본적으로 기술력이 주도하는 오늘날의 세계경제에서 기술혁신에는 소위 수확체증의 법칙이라는 기술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경제의 높은 생산성도 이제는 세계최대의 가전제품·정보통신기기의 생산기지가 된 중국에 밀리고 있다. 우리기업도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중국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겨야 할 판이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흐지부지되고 있는 경제원칙을 바로 세우고 동시에 기업가의 활력을 북돋워야 한다. 특히 기업의 연구개발투자를 촉진하면서 기술과 경영을 동시에 아는 우수한 경영인적 자원의 양성과 광범위한 기업경영 환경 개선을 통하여 기술양극화시대에 속히 대비해야 한다. 이제 다시 새로운 마음과 시각으로 경제를 들여다 봐야 할 때다. drcylee@kgsm.kaist.ac.kr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