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경 <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장prangel@sac.or.kr >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과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키로프극장은 러시아 공연예술의 상징이다. 두 극장은 러시아 공연예술의 앞자리를 주고받아 왔다. 오랫동안 러시아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전통적인 문화예술공간이었던 키로프극장은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의 중심이 모스크바로 넘어가면서 그 영예를 볼쇼이극장에 넘긴 바 있다. 사회주의 예술운동의 본산으로 오페라와 발레의 세계적 중심지로 떠오른 볼쇼이극장은 소련의 붕괴 이후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했다. 재정난은 물론이고 건물조차 10여년 전에 폐쇄권고를 받았다. 위기를 구원할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세계적인 지휘자 게나디 로제스트벤스키는 취임 9개월만에 별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물러났다. 볼쇼이극장의 전면적인 리노베이션을 위해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서구의 오페라하우스들이 특별공연을 열어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는 등 볼쇼이 돕기에 나섰다. 우리나라에서도 볼쇼이돕기모임이 결성돼 특별공연을 열었다. 그러나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중심의 축은 키로프 마린스키극장으로 옮겨 갔다. 꾸준히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관객과의 유대를 강화해온 키로프극장은 또 한번 전성기를 맞고 있다. 발레리 게르기에프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키로프 오페라단과 바지에프가 이끄는 키에프 발레단은 명성을 되찾고 있다. 얼마전 해외의 한 언론은 세계적인 예술단체들의 위상 변화는 정부나 체제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예술단체들이 현실에 안주하면서 예술시장의 변화에 둔감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평가받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카라얀 사후 별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최근 민영화가 논의되고 단원의 임금인상 요구 등 내홍을 겪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라는 것이다. 볼쇼이가 소비에트연방의 문화 전초기지로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면 베를린 필하모닉은 동서간 냉전구도의 영향 아래서 또 다른 의미에서 체제의 보호를 받으며 안주했다는 것이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극장과 예술단체들의 흥망성쇠가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예술이 체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공연예술의 출발점은 객석이라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할 평범한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