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정부종합청사에 근무하는 최 사무관은 며칠전 공구함에서 드라이버를 꺼내들고 집에 있는 선풍기 한 대를 분해했다. 그 다음날 큰 가방 속에 선풍기 날개를 넣어 정부 청사로 출근했다. 이어 여러 날 동안 선풍기에서 분리한 모터 몸통 부분을 차례차례 사무실로 옮겼다. 부품을 다 옮긴 날 그는 사무실에서 선풍기 조립을 마치고 다소 흥분된 표정으로 선풍기의 강풍 버튼을 꾹 눌렀다. 선풍기 바람에 더위가 다소 가시자 그는 본격적인 야근에 들어갔다. 대전 정부종합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더위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전의 정부종합청사는 공조시스템이 잘 갖춰진 인텔리전트 빌딩인데 무슨 더위냐고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무원 퇴근 시간인 오후 6시쯤 되면 청사의 냉방이 전면 중단된다. 이때부터 더위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사무실에 있는 창문을 있는 대로 다 열어보지만 '성냥갑'처럼 만들어진 사무실엔 바람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던 일을 중단하고 퇴근할 수도 없는 노릇.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밀려있는 업무로 정시 퇴근은 엄두도 못내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양말은 물론 웃옷도 벗어 보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 궁여지책으로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려고 해도 선풍기 반입을 막고 있어 이도 여의치 않다. 화재의 위험이 따르고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취지에서 선풍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스파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선풍기 반입 작전이다. 들키지 않고 선풍기를 사무실에 갖다 놓아도 눈치보면서 틀어야 한다. "밤마다 한증막 같은 곳에서 일하니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공무원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아쉽다" 최 사무관은 같은 사무실 직원들이 매일 야근하느라 밤 10시 넘어 퇴근하는데 더위로 지쳐간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경제관료 의식조사를 한 결과 공무원 75%가 '이직(移職)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는 뉴스가 새삼 떠올랐다. 김문권 벤처중기부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