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실시한 항공안전 예비평가에서 '낙후국' 판정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0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미 연방항공청은 지난 5월 건교부 항공국을 대상으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정한 안전기준 준수 여부를 조사한 결과 8개 전항목에서 결격사유가 발견돼 '카테고리2(2등급·항공안전 위험국가)'리스트에 올렸다. 연방항공청은 건교부에 즉각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오는 18일 실시될 최종 평가에서 대책이행이 불충분할 경우 2등급 판정을 내리겠다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판정을 받으면 국내 항공사가 미국내 신규노선에 취항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존노선 취항도 엄격히 제한된다. ◇어떤 판정을 받았나=미 연방항공청의 평가 결과 건교부는 △사고조사의 객관성 미비 △본부 통제인력 부족 △운항규정 부재 △기장자격심사 체제 미비 △재교육 프로그램 허술 등의 지적을 받았다. 모두 항공기 안전운항과 관련된 것들이다. 특히 조종사와 정비사 등 6천6백여명의 항공 종사자들을 지도·감독·심사할 항공국의 관련 인력이 3명밖에 안되는 데 대해 미 항공청은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안전운항 관련 사항도 세분화 규정화돼 있지 않아 재량권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또 항공국 공무원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도 거의 없어 발전하는 항공기술을 쫓아가기 벅차고 이에 따라 안전운항에 저해 요소가 된다는 평가도 나왔다. 미 연방항공청의 건교부 평가는 한·미항공협정 제16조 '양국은 안전부문에 대해 상호 확인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이뤄졌다. ◇왜 이렇게 됐나=지난 96년 우리나라는 1등급을 받았었다. 당시만 해도 항공부문이 WTO(세계무역기구) 협상대상에서 제외돼 별 문제가 안됐지만 그뒤 협상대상에 들면서 선진국들이 항공행정의 안전성을 강조하고 까다롭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건교부는 선진국의 '안전공세'에 대응하지 못했다. 99년에야 항공국내에 안전과를 설치하는데 그쳤을 정도다. 게다가 97년 이후 잇따라 발생한 크고 작은 항공기 사고도 이번 판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파급영향 및 대책=2등급 판정이 떨어지면 미국의 신규노선 취항은 물론 31개 기존 노선도 금지 또는 취소되는 등 각종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과거 페루 요르단 파키스탄 등이 정치불안 등의 이유로 이 판정을 받아 미국 취항을 금지당한 적이 있다. 여기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이 외국항공사와 맺은 편명공유(코드셰어) 및 예약공유 등 전략적 제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건교부는 예비판정을 통보받은 뒤 항공국 인원을 58명에서 85명으로 확대하고 관련부서도 5개과에서 7개과로 늘리는 등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이같은 뒤늦은 조치가 미국의 최종판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따라서 운송실적 세계 10위라는 양적팽창에만 만족할 게 아니라 차제에 항공안전 전 분야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수술을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