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약세가 환율을 끌어올리는 유일한 재료가 되고 있다. 이월 네고물량과 외국인 직접투자(FDI)자금 등의 물량 부담이 시장에 깔려있으나 엔화 향방은 환율 상승과 하락의 방향을 정해주고 있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3원 오른 1,295.3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엔화 약세와 물량 부담의 두 갈래길에서 엉거주춤한 모습을 보이던 환율은 일본발 '엔화 약세 용인'이라는 모멘텀으로 서너자욱 움직이는 양상을 보였다. 달러/엔이 125엔 언저리까지 근접했음에도 달러/원은 상승폭이 크지 않았다. 장중 수급은 거의 균형상태를 유지해 환율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달러/엔의 125엔 상향돌파 여부가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엔화 약세와 물량 부담이라는 엇갈린 지표를 놓고 시장거래자들은 고민이 한창이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달러/엔이 거듭 125엔을 놓고 뒤로 밀리는 양상이 거듭되고 있어 120∼125엔 박스권에 갇힐지, 상향 돌파에 다시 나설 지에 대한 확인절차가 진행중인 것 같다"며 "어제부터 역외의 헤지펀드 물량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으나 아직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국계은행의 다른 딜러는 "달러/엔이 오르는 만큼 반영하지는 못하지만 달러/엔이 런던장에서 125엔에 올라서면 내일 대기물량이 흡수될 것"이라며 "내일 거래 범위는 1,292∼1,298원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자(롱)으로 가자니 장이 무겁고 팔자(숏)으로 가자니 엔화 약세 때문에 주저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 잠자는 시장 깨운 '구로다' 재무관 = 정체된 흐름을 보이던 시장에 '불씨'를 던진 것은 일본 구로다 재무관의 발언이었다. 달러/엔은 장중 내내 124.50엔대의 강보합권을 유지하다가 '엔 약세 용인' 발언으로 124.90엔대까지 튀어올랐으나 다시 124.70엔대로 내려섰다. 125엔에서는 옵션매도물량과 대기하고 있으며 심리적 저항선으로 강력하게 작용중이다. 3일 뉴욕장에서 달러/엔은 고이즈미의 "의도적인 엔화 약세 유도는 없다"는 발언효과가 희석되고 오히려 일본 경제 둔화에 대한 우려 재발로 오름세를 타며 124.40엔에 마감했었다. 일본 재무성 구로다 재무관은 "환율이 펀더멘털을 반영해야 한다면 엔화 약세를 막아야 할 이유는 없다"며 "재무성은 엔화의 상승 및 하락을 유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일본 정부가 경기 회복과 수출 증진을 위해 엔 약세를 바라고 있다는 관측을 확인시켰다. 이는 곧 일본 정부가 엔화 약세를 용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거래자들의 적극적인 달러매수세를 촉발했다. 오는 20일부터 이틀간 제노바에서 열리는 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외환문제는 의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일반적인 통화 정책이 논의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구로다 재무관은 말했다. 국내 시장거래자들은 전날 엔 강세로 보유 물량 처분에 서둘러 나선 탓에 된서리를 맞은 경험으로 이날 조심스런 거래를 행했다. 역외세력은 4일 뉴욕장이 휴장임에 따라 큰 물량없이 매수와 매도를 번갈아가는 관망세를 보였다. 업체들은 1,295원 이상에서는 네고물량을 출회했으며 결제수요는 1,294원선을 지지하는 정도로 등장했다. ◆ 환율 움직임 및 기타지표 = 환율은 전날보다 2.70원 오른 1,295원에 출발했다. 달러/엔이 뉴욕장에서 124엔을 회복, 역외선물환(NDF) 환율이 1,298원까지 상승한 것을 반영했다. 개장 직후 환율은 1시간여동안 1,295∼1,296원의 좁은 범위에서 등락하다가 물량공급으로 장막판 1,294.20원까지 저점을 내린 끝에 1,294.40원에 오전장을 마쳤다. 오전 마감가보다 0.10원 오른 1,294.50원에 거래를 재개한 환율은 한동안 1,294원선을 거닐다가 달러/엔의 급등세를 타고 동반 상승했다. 환율은 고점 경신 행진을 벌이며 1,297원까지 다다른 뒤 네고물량에 되밀려 레벨을 차츰 낮춰 1,295원선으로 내렸다. 나흘만의 주식 순매도로 돌아선 외국인은 거래소와 코스닥에서 각각 582억원, 20억원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이날 환율흐름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으며 이틀 뒤 역송금 수요로 환율 상승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장중 고점은 1,297원, 저점은 1,294.20원으로 하루 이동폭은 2.80원이었다. 이날 현물 거래량은 서울외국환중개를 통해 21억7,370만달러, 한국자금중개를 통해 8억9,310만달러를 기록했다. 스왑은 각각 6,000만달러, 7,000만달러가 거래됐다. 5일 기준환율은 1,295.50원으로 고시된다. 오전 9시43분부터 57분까지 서울외국환중개의 전산장애로 거래가 중지되기도 했다. 한편 거주자 외화예금 잔액이 6월말 현재 136억9,000만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8월말의 135억6,000만달러보다 1억3,000만달러, 전달말보다 9억8,000만달러가 늘어났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