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1분기 경영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률이 전년동기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고,제조업의 38%가 돈을 벌어 부채에 대한 이자도 내지 못냈다고 한다. 그동안 급성장을 해오던 정보통신 산업의 실적 부진 또한 눈에 띄었다. 환율 급등,우리나라와 세계 경기의 둔화 등 여러 가지로 경영여건이 악화되는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면,이 정도의 실적도 어쩌면 대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원도 별로 없고 자본도 부족한 나라에서 우수한 인적자원과 오로지 "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일궈낸 한국기업이야말로 신화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발표를 계기로 우리나라 기업의 수익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누가 뭐라 해도 자본주의사회에서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한가지다. 그것은 바로 이윤을 창출하여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기업의 관리자에게 "당신은 매출을 관리하는 사람입니까. 혹은 이윤을 관리하는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많은 경우 매출에 집중한다는 답을 얻게 된다. 물론 이렇게 하는 이유는 관리자들이 한가지 중요한 전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매출을 많이 올리다보면 결국 이윤이 따라 오리라는 전제다. 즉,많이 팔면 돈은 벌리게 된다는 것이다. 상당히 타당한 논리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요즘과 같이 경쟁이 치열한 시장환경에서는 이러한 전제가 무너지기 일쑤라는 점이다. 경쟁이 심해질수록,그리고 기업이 단기매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수록,제품을 많이 팔기 위해서는 기업이 이윤을 희생하는 수단을 많이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경쟁업체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가격을 인하해 주고,선물도 주고,물건을 사지 말아야 하는 사람에게까지 팔아서 위험을 부담하는 등 과다한 비용이 발생되어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결국 매출과 이익간의 고리는 점차 끊어지게 되는 셈이다. 얼마전 위험천만한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고등학생들을 포함한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한 지방 거리에서 도우미들을 동원한 어떤 신용카드 회사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카드 가입을 독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상담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고등학생들도 꽤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들에게 실제로 카드가 발급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신용카드라는 제품의 특성상 고객의 신용도와 수익성을 신중히 고려하여 발급하는 것은 현명한 경영을 하는데 있어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건만,신용거래에 대해 아직 미숙하고 악성채권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판촉행사를 하고있는 것이다. 이는 매출 중심사고의 단적인 예라고 생각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용카드를 발급해 주겠다는 한 직원의 끈질긴 호소를 질책하는 어떤 여성의 글을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한참을 거절한 끝에 직원은 놀라운 제안을 했다고 한다. 카드를 배달 받은 후 바로 잘라버려도 좋으니 가입만 해달라는 것이었다. 카드를 만들어 우송하는데도 비용이 들텐데,그 직원에게는 단지 매출목표만이 있을 뿐이었다. 더욱 재미난 것은 신용카드사들의 가두 회원모집을 규제할 수 있는 법안을 재경부에서 마련했다는 며칠전의 보도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 의아스러운 법안이 아닐 수 없다. 이윤을 생각하는 기업이라면 수익성에 해가 되는 고객을 유치하는 것에 대해 왜 규제가 필요하겠는가. 시키지 않아도 기업이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는 사항이어야 할 것이다. 신용카드사들만이 매출 중심 경영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리고 매출을 추구한다는 것만으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매출을 추구하는 방법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기업들은 매출 증대 자체가 목표가 되는 경영방법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리고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토대로 이들을 남달리 만족시키고,만족한 고객만이 우리에게 이윤을 허락하며,이것이 결국 매출로 이어진다는 새로운 질서에 빨리 적응해야 할 것이다. dhkim@yonsei.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