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유럽연합(EU)의 조선 협상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미로에 빠졌다. 지난 2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조선 협상에서 양국은 일부 사안에 대해 입장차를 좁혔으나 대부분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며 핵심 쟁점에 대한 협상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이달 30일까지 한국 조선업계를 저가 덤핑수주 혐의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는 EU의 방침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과 EU의 이번 협상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사안은 선가 인상폭, 선가 인상선종, 선가 인상 적용기간 등으로 EU측은 선종에 따라 7-12%의 선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5% 안팎의 인상률을 제시하며 EU측 안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했다. 우리측은 선가 인상에 대해 업계 자율에 맡길 수 밖에 없다는 태도에서 한발 양보한 안을 내놓았지만 EU의 요구를 업계가 수용하기는 무리라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선가 인상은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 경쟁 국가가 모두 동시에 올릴 때만 설득력을 갖는다"며 "선종에 따라 최고 10% 이상 선가를 올려달라는 요구는 업계가 수용하기에는 무리"라고 말했다.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될 경우 EU측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안은 WTO에 불공정 거래 혐의로 제소하는 방법뿐이다. 이렇게 될 경우 정부는 맞제소까지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WTO로까지 문제를 끌고가면 일정기간 양자 협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이에 앞서 협상 타결의 여지는 남아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실 조선사에 대한 출자전환을 정부보조금으로 규정한 WTO 사례가 없기 때문에 제소까지 가더라도 불리할 게 없으며 현재 수주잔량도 넉넉해 제소 자체가 당장 타격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협상 타결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양측은 26일 협상이 결렬됐지만 앞으로 회의, 서신교환 등을 통해 이견을 좁히기로 합의했다. 제소까지 가더라도 WTO 판정이 어떻게 내려질지 모르는 데다 양측 무역관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양측의 견해차가 너무 커 어떻게 결론이 내려질지는 알 수 없다"며 "그러나 협상의 여지는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기자 gc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