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88년 미국에서 에드워드 벨라미(Edward Bellamy)의 '과거를 돌아보며(Looking Backward,2000∼1887)'라는 미래소설이 출간됐다. 1887년 잠든 주인공이 2000년에 깨어나 놀랍게 바뀐 신세계를 경험한다는 유토피아 이야기다. 그의 새 친구는 1930년 이전의 지옥 같았던 세계가 어떻게 지금같이 좋은 세상으로 바뀌었는지를 들려준다. '이제 누구도,자신이건 자식을 위해서건,내일을 위해 배려할 필요가 없다. 국가가 모든 시민의 영양과 교육,그리고 편안한 삶을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약 1백만부 이상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고,'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정부 표어를 유행시켰다. 그 이래 자본주의국가의 복지지출 확대는 전 세계적 경향이 돼왔다. 지난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한국의 공적부조(公的扶助)제도도 확대 일로를 걷고 있다. 이 제도의 좋은 점을 모르는 바보는 없다.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경제적 안전을 제공하는 것이다. 문제점은 -정부가 애써 홍보하지 않는 점- 누군가 그 비용을 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보험이건 생계보장이건,어떠한 공적부조 계획도 A에게 나누어줄 것은 B로부터 거두어야 한다는 기본원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주도의 재분배계획은 절대적인 가치평가를 내릴 수 없는 논제다. 한반에 우등생이 있는 것은 꼴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도 퇴출되거나 빼앗기는 자가 있는 덕으로 승진하거나 얻는 자가 생기게 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이긴 자들은 실패한 자에게 빚지고 있는 턱이므로 더욱 복지정부의 이념적 편향성을 말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 문제는 정부가 과연 준비된 가운데 이 거대한 계획을 추진하는가 하는 것이다. 지난 건강보험을 사례로 보자. 보건복지부가 금년 봄 55곳의 요양기관을 조사한 결과 49곳,거의 90%가 부당급여청구를 했다고 한다. 내과환자에게 정신병 질환치료 급여청구를 한 의사,휴진일에 1백여건 수진을 했다고 청구한 의원이 있다. 어떤 병원에서는 의사 간호사 직원이 모두 짜고 병원기록부를 창작해 건강진단수검자 수백명을 입원환자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심사인력 5백명으로 월 7천7백만건을 처리한다고 하니,1인당 월 15만건 이상을 심사하는 꼴이다. 누구든 마음만 먹는다면 당국을 속이기는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인 것이다. 공돈이 있는 곳에 사기가 도사림은 동서고금의 세상이치다. 이것은 제도와 관리의 문제이지 자정노력 같은 캠페인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적(私的)부조나 보험의 경우 제 주머니에서 곧바로 나오는 돈이기 때문에 지출과정은 철저히 관리된다. 그러나 남의 돈으로 인심을 쓰는 공적부조제도는 이른바 모럴해저드의 확실한 대상이 된다. 보다시피 건강보험공단은 물경 96명의 노조전담직원을 두고 이 공돈으로 '우리 젯밥부터 먼저 챙기자'고 나서고 있지 않은가. 정부가 공적부조의 확대를 원한다면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효과적인 감시제도와 제재능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오히려 잠재적 범죄자를 양산하고 재정을 파탄시키는데 더 기여할 뿐이다. 우리의 공적부조계획은 우선 설계때부터 엄청난 관리기구와 예산이 필요함을 간과하고 있다. 주머니를 터는 B는 A에 앞서 그 돈을 관리할 C를 먹여 살릴 궁리부터 해야하는 것이다. 다음 철저한 응징의 준비가 돼있지 않다. 만연한 도덕불감증을 그나마 막는 길은 1백에 하나 적발되는 위법 사례를 퇴출과 체형으로 무참히 처벌해 위계(僞計)의 위험이 1백배 이상 두려움을 알리는 방법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이 나라에는 법규만 무성하고 법을 집행하는 공권력은 없다. 고발자를 죄인취급하는 '공범자 풍토'가 있고,생활범죄나 신용불량은 죄가 아니라는 온정적 법질서 의식이 있다. 경축 때마다 빠지지 않는 대통령 특별사면에서 경제사범은 항상 1번으로 사면 복권된다. 정부는 의도를 앞세워 달리기 전에 탄탄한 예산의 준비,의식(意識)과 제도의 구비를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kimyb@cau.ac.kr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