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낯선 마당에 처음 풀어 놓으면 제일 먼저 하는 짓이 울타리로 달려가 오줌을 누는 일이다. 소변이 급해서 그런게 아니라 배설물의 냄새를 통해 자기영역을 표시해 두는 것이다. 이같은 표시를 동물생태학에서는 센트 마크(scent mark.냄새로 나타내는 세력권 표시)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자기 땅' 표시를 이처럼 배설물이나 분비물 흔적으로 한다. 이 세력권에 누군가 침범할때 싸움이 벌어진다. 그동안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등 3개 정부부처는 IT분야에 이 센트 마크를 찍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비슷비슷한 성격의 협회와 단체를 산하에 경쟁적으로 두면서 자기 세력권을 넓혀 왔다. 전자지불포럼(정통부) 전자화폐표준화포럼(산자부) 음성정보기술협회(산자부) 음성인식협의회(정통부) 캐릭터산업협회(산자부) 캐릭터문화산업협회(문화부) 게임종합지원센터(문화부) 게임기술개발지원센터(산자부) 게임기술개발센터(정통부) 등이다. 그러다보니 서로 '자기땅'이라고 주장하는 영역을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코를 막고 센트 마크에 따른 지독한 냄새를 참아야만 한다. 세계에서 가장 생명력이 강하다는 한국의 관료조직이 뿌려놓은 배설물이었으니 그 냄새가 얼마나 독하겠는가. 더구나 냄새가 겹치는 지역의 기업들은 독한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재정경제부가 IT분야의 부처간 업무조정에 나선 것은 이런 악취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조정결과 나온 합의안을 보면 악취가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역겨운 냄새가 더해진 느낌이다. 왜 그런가. 먼저 3개부처가 행정서비스의 고객인 기업을 제쳐두고 업무조정 협상을 진행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재경부가 공개한 업무조정원칙을 보면 첫번째 조항이 '현행 정부조직법상의 업무분장 존중'이다. 기업이나 국민의 편의를 위한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협상은 처음부터 행정부처 편의 위주로 시작됐던 것이다. 합의안이 나오자 관련 기업들이 "달라진게 거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원스톱서비스인데 부처간에 '갈라먹기 식'으로 업무를 나눴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업무조정이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업무를 조정했으면 그에 따라 산하 협회나 단체의 통폐합이 당연히 함께 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대부분 현행 그대로다.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산하 단체나 협회는 각 부처가 철저히 갖고 가겠다는 발상이다. 기업들이 여기저기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종전과 달라진게 없다. 세번째는 업무조정이 시대의 흐름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의 경우를 보자.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과 가정용 게임 등은 산자부가, 온라인 PC용 게임은 정통부가, 콘텐츠는 문화부가 각각 맡도록 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같은 게임종류간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추세다. PC기반 온라인 게임을 가정용 게임기용으로 개발하고 아케이드게임을 PC용 온라인게임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업계에선 활발하다. 이런 게임업체들은 업무조정에도 불구하고 산자부와 정통부를 모두 상전으로 모셔야(?) 한다.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행정서비스의 수요자 입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하면 해답은 절로 나오리라고 본다. 최종 합의안 도출에 시간이 좀더 필요한 상황이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기업들의 의견을 먼저 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수요자 입장에서 업무를 조정하는 것이 아직까지 부처간 이견을 보이는 이 합의안의 처리를 수월하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cws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