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지 어언 1년이 된다. 당시의 흥분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되었고,일반 국민으로선 그저 답답하다는 표현만 가슴에 담고 있을 뿐이다. 마치 우리가 북한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쥔 것처럼 보였는데,아직도 북한과 미국의 회담이 실제적으로는 비중이 더 큰 것 같고,따라서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국민을 답답하게 만든다. 전쟁방지와 평화정착을 목표로 만난 회담의 결과,북한상선이 북방한계선을 넘나들고 우리의 영해를 침범하는데도 우리의 군대는 수수방관했고,이것이 용인되는 형국이 됐다는 것이 국민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김정일 답방이 언제 이뤄지는가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답방에서 논의하고 협의할 의제를 밝히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역시 국민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왜 미국은 의제를 사전에 공개하는데 우리는 못하는가. 경제를 제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개혁과제가 산적해 있는데,정치권은 무엇을 위해 북한문제에 이토록 신경을 쓰고 매달리고 있는지 국민은 정말로 답답하다. 북한은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정치적으로 종교적 열정에 비유될 특정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특이한 나라다. 동일민족이기에 우호적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한둘이 아닌 나라다. 이런 예측이 불가능하고 이해하기 힘든 상대와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구체적 사항까지 일일이 국민의 사전동의를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기본입장에 대해선 사전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후유증 최소화를 위해서 필요하다. 국론 분열이 두려워 공론화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민족문제는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해결해야한다는 취지에 심정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단,'우리'라는 표현이 어떠한 사고방식을 가진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작업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독일통일이 독일사람들만의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지지는 않았듯이,한국의 통일도 한국사람들만의 노력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며,이는 통일 후 통일비용 분담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이러한 국제적 시각을 갖춘 사람들이 우리라는 표현의 구성원이 되어 있는지를 우선 확인해야 한다. 남북문제 해결의 첩경은 의연한 자세로 대처하고,국민과 국제사회가 동의하는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정경분리의 원칙은 상호 이해가 상충되지 않는 부문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정책담당자가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경제환경과 시장경제원칙을 이해하는 전문가로서 남한측 협상단을 구성해야 한다. 또 북한은 무슨 개혁을 해야한다는 제안을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한다. 만일 현재의 체제가 꾸역꾸역 유지될(소위, muddling through 주장대로)것이라면 북한체제를 돕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가를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한다. 우리 경제위기 때 IMF의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마셜플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국가들이 개발계획을 스스로 세우도록,즉 개발의 이니셔티브가 내부에서 형성되도록 미국이 강요한 것이 기본적 요인이었다는 평가를 깊이 새겨야 한다. 경제운영의 투명성 결여가 경제위기의 원인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고치려고 개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투명성이 결여돼 있는 정책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기 어려우며 성공하지 못한다. 이것이 IMF위기로부터의 교훈이며,대북한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미국이 검증하겠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자발적 동기부여가 돼 있지 않으면 결코 성과를 나타낼 수가 없다. 경제는 적어도 중국식의 개방전략을 취한다는 것을 보일 때 우리가 협상에 응할 수 있다는 의연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것이다. 과잉보호나 애정보다는 무관심이 오히려 약이 될 수가 있다. chskim@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