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형 < 고려대 법학 교수 / 통상법연구센타 소장 >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6월5일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철강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발동을 위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미국 철강업계와 의회가 요구하고 있는 철강수입에 대한 규제를 거부하고 있었는데 돌연 이를 수용함으로써 한국을 포함한 EU·일본 등 철강수출국들은 앞으로 ITC 조사결과에 따라 대미 수출에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1974년 제정된 미국 통상법 201조에 따른 '세이프가드'는 수입물량이 급증해 관련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거나,그럴 우려가 있을 때 부과되는 조치다. 세이프가드는 수출국 또는 수출기업의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입을 제한하기 때문에 임시적으로 적용된다. 그런데 아직 세이프가드 조사대상인 철강제품의 범위는 결정되지 않고 있다. 즉 완제품으로 국한해야 할지,아니면 반제품도 포함해야 할 지의 문제와,미국과 NAFTA(북미자유무역지대)를 구성하고 있는 멕시코·캐나다에서 수입한 철강제품도 조사대상에 포함해야 할지가 결정되지 않았다. 이들 문제는 세이프가드 조사를 수행하는 ITC의 판정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민감한 문제인데,가능한 한 철강수입으로 야기된 피해를 인정할 수 있도록 조사대상이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눈 여겨 볼 점은 세이프가드 조사에 대해 미국내 경쟁력이 취약한 일관제철업체들과,경쟁력을 보유한 미니밀업체들의 입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니밀업체들은 세이프가드의 발동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일관제철업체들이 부당하게 지원받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ITC는 약 6개월의 조사를 수행한 뒤 철강수입으로 인해 미국의 철강산업이 '심각한'피해를 입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ITC가 피해의 긍정판정을 내려서 세이프가드를 건의하더라도 부시 대통령은 이 건의를 거부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세이프가드를 결정할 때, 수입철강제품을 사용하는 미국내 다른 산업의 이익과 다른 국가들과의 통상관계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ITC의 세이프가드 조사 개시가 곧 긴급수입제한조치로 이어질 것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세이프가드 조사의 개시'만이 심각한 것 처럼 부각되고 있다. 즉 발표된 부시 대통령의 성명서 제목이 '철강에 대한 다자적 이니셔티브'인 점과,세이프가드 조사의 개시가 이 이니셔티브의 주된 내용 중의 하나인 점이 간과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 철강산업 보호대책의 하나로 미 무역대표부(USTR)에 철강의 전세계적 과잉생산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과 협상을 벌일 것과,철강산업에 대한 보조금의 제거 등 철강무역에 대한 규범제정을 위해 다른 국가들과 협상할 것을 명령했다. 이와 동시에 ITC에 대해서는 세이프가드를 위한 실태를 조사하도록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철강수입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사를 다자적 전략의 일부분으로 고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 철강업계와 의회가 비교적 신속하게 철강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를 적극적으로 바라고 있는 것과는 달리,부시 대통령은 철강문제에 대해 다자적인 해결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제기하고 있는 철강의 전세계적 과잉생산과 또 보조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이프가드 조사를 통해 한국 등 주요 수출국들을 압박함으로써 이들과의 협상에서 보다 우월적인 위치에 있기를 바랄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협상에서 철강문제가 다자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부시 대통령은 굳이 세이프가드를 명령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부시 대통령의 이러한 입장을 고려한다면,한국정부와 철강업계는 USTR이 주도하게 될 다자협상에 대해 면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역시 철강문제에 민감한 EU와 일본 등은 물론 미국내 자동차산업 등 철강 수요자들과 공조해야 하고,필요한 경우 오는 11월 카타르에서 열릴 예정인 WTO 뉴라운드의 출범문제와도 연계해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wtopark21@hotmail.com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