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나 사진없이 문안으로만 된 광고.

맑은 물을 입 속에 넣었을 때의 개운한 느낌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는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의 신문광고중 하나다.

20여년전 시류와 영합하지 않고 한국인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찾아내고 지키는 데 앞장선,지금은 작고하신 한창기 사장과 함께 의기투합했던 철두철미한 아트디렉터 이상철(현 이가솜씨 대표)의 눈썰미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소신과 자신을 가지고 짠 1978년 9월호의 목차를 어떤 과장이나 극화없이 진솔하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강력하다는 사실,가장 디자인 안한 디자인이 가장 순결하고 원초적인 설득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꿰뚫어 본 이상철의 천부적 재능이 만들어낸 시각적 간결미다.

이 광고는 잡지제목 하나하나를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마력과도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이같은 광고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이땅의 지성인들에게 큰 울림을 줬던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의 내용에 대한 자신감이 배경이 됐을 것이다.

이제 이 광고를 다시 보면서 이태리 베네통사 사장 루치아노 베네통과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의 환상적 팀워크와 한창기 사장과 이상철 아트디렉터의 관계를 비교해 보게 된다.

지금 그가 생존해서 탁월한 감각을 타고난 아트디렉터에게 비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창조적 제작환경을 조성해 주고 있다면 우리의 자존심을 높힐 수 있는 좋은 광고가 얼마나 더 많이 나올 수 있을까...

제대로 죽는 방법,한반도의 젖으로 일본이 컷다,문 잠그고 몰래 빚는 창평 엿,국회의원의 오입질(두드러기),스승의 목숨 등 수십 항목의 잡지 목차자체가 광고 제목으로 더 손 볼 것이 없기 때문에 이런 형식의 광고는 그들에게 필연적이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윤호섭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