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는 내년 연구개발 예산편성에서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과 ''부처간 중복투자 방지''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세계무역기구 출범으로 산업정책이 사실상 기술정책으로 축소되고,특히 정보 바이오 등 신기술ㆍ신산업이 부상하면서 거의 모든 부처가 연구개발 예산을 요구하자 기획예산처도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금년 연구개발 예산이 일반회계 기준으로만 4조5천억원에 달하고,부처간의 경쟁도 치열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획예산처가 방향 설정은 일단 잘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실현할지에 있는 것 같다.

사실 부처간의 중복투자는 시스템적으로 보완만 제대로 한다면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 부분이다.

민간이 투자하기 곤란한 기술분야는 예산을 집중하고,그렇지 않은 곳은 지원을 줄이겠다는 게 기획예산처의 의도인 것 같은데 그러자면 우선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정부 예산으로 무엇이 유도될지 그 ''부가성(additivity)''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자칫 정부예산이 민간의 자원을 밀어내는 ''구축(驅逐)효과''를 가져와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가령 정부가 1억원의 예산을 가지고 2억원 규모의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기업의 1억원과 함께 투자한다고 치자.여기서 정부예산 1억원 때문에 기업의 1억원 투자가 ''신규''로 유도된 것인지,아니면 기업이 혼자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1억원의 예산이 지원된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만약 후자쪽이면 경제 전체적으로 가능했던 3억원의 투자가 2억원으로 줄어들고,정부예산을 절대 필요로 하는 다른 기술적 기회를 놓친 셈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연구개발 지원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기획예산처가 유사한 성격은 묶어서 통합하겠다는 중소기업 관련 각종 정책금융들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민간의 기업금융을 밀어내고 있는 정책자금은 없는지를 검토하는 게 더 시급한지도 모른다.

정부의 각종 공공 벤처펀드도 그렇다.

이들이 진입이나 퇴장시기를 잘못 잡으면 민간의 벤처자본을 되레 쫓아내거나 위축시킬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구축효과''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와도 맞물린다.

기획예산처가 예산편성에서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에 주목하려면 ''구축효과''를 불러 올 가능성이 높은 사업이나 자금들을 전반적으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안현실 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