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아이가 변했다.

입에 담느니 ''공부''얘기고,''입시'' 아니면 ''내신 성적''얘기다.

대학 나온 엄마 아빠가 존경스럽다고 하고 대학 다니는 큰 아이가 달리 보인단다.

항상 피곤해 하는 얼굴이다.

1주일에 세번 학원에 가는 날은 아침 7시에 나가서 밤 12시에 돌아온다.

"학원 안 다니면 어떠니"

그것은 못하겠단다.

불안하단다.

친구들 다니는데 혼자만 안 다닐 수는 없다는 논리다.

학교 수업보다 효과적이라고 자율진단한다.

''시험공부를 하게 만든다,머리에 들어오게 한다''

두가지를 댄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다르지는 않다고 한다.

"학교 관두지 않을래"

참다 못해서 내가 아이디어를 냈다.

눈이 동그래졌다.

그 시간에 너 읽고 싶은 책 다 읽고,너 보고싶은 영화 다 보고,네 장점을 살릴 만한 훈련을 하고,너 놀고 싶은 대로 마음껏 놀면서 3년을 살면 어떨까.

네명의 가족은 모처럼 심각하게 머리를 맞대고 묘수를 짜냈다.

"너네 엄마 멋있다…"

친구들이 한마디씩 한단다.

솔직히 많은 친구들이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하고 싶은 것이 정말 확실하다면,학교 관두고 준비하고 싶다는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그 나이에 하고 싶은 것이 그렇게 확실하다면 좀 이상한 일 아닌가.

그렇다면 아이들은 이 꽃다운 3년을 이렇게 보내야 하는가.

학교도 문제는 문제다.

어떻게 시험기간이 그렇게 길까.

충분히 준비시간을 준다고 하루에 한과목만 시험을 본다.

덕분에 오월 들어서 초파일,어린이날,어버이날등 쉬는 날을 모두 놓쳐 버렸다.

돌이켜 보니 내신이 없었던 큰 아이의 고교시절은 훨씬 더 행복했었다.

적어도 매일 매일의 시험 잘 보기 스트레스는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 상위권의 학생들은 만점에 가깝거나 평균 95점 이상이라니 이해가 잘 안된다.

어떻게 그 많은 과목,그 많은 내용을 다 익히고 있는가.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러니 학원이 어떻게 반복 훈련을 안 시키겠는가.

내나 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 풀(pool)에 익숙하게 만드는 반복 작업은 시험 잘 보게 하기에 분명 유리할 것이다.

그래서 혼자 공부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사회를 살아본 경험에 의하면 의문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첫째,사회란 시험장 시험을 잘 보는 것만으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탁월한 일을 하든,평이한 일을 하든 마찬가지다.

사회에서는 결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문제를 찾아서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사회에서 평준화란 오히려 어색한 일이다.

우열이 있고 차이가 있고 기준이 다르다.

다만 여러 역할,여러 직업,여러 직책,여러 기능이 각기 자리에서 제 성능을 내야 사회가 돌아간다.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기본일 뿐이다.

''공교육''에 대한 회의가 커지는 시대다.

온갖 묘수가 등장하곤 한다.

그런데,''평등 실현''이라는 명분 하에 평준화에 매달리는 한,또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시험장 시험''이라는 무색무취한 객관적 기준을 지키려는 한 어떤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교육규제를 완화하면 큰일나나.

고등학교 이상 수준에서 학교의 차이,시험방식,학생 선발의 방식,졸업의 방식을 완전자유화하는 것이 오히려 ''누구나 시험 잘 볼 기회''에 매달리게 하는 지금의 사회심리 조장보다는 나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 할 것인지 나는 전혀 모른다.

솔직히 별 관심도 없다.

이 아이가 인생에서,또 사회에서 하나의 역할을 하면서 살면 된다.

남에게 폐를 덜 끼치고,홀로 설 정도의 독립심과 기량만 갖추면 된다.

무엇보다도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삶을 즐기기를 바란다.

"그래,학교 관둘지 생각해 봤니"

아이에게 묻는다.

1학기 다녀보고 결정하겠다며 덧붙이는 말.

"그런데 나는 친구가 참 좋거든.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친구라던데…"

아이는 학교의 이점을 포착하는 상식을 지녔다.

왜 이런 이점을 살리는 학교가 될 수 없는 걸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주)서울포럼 대표 jinaikim@www.seoul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