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는 대통령 관저 뒤로 1백m쯤 떨어진 뒷산에 석조여래좌상 하나가 보호각 속에 안치돼 있다고 한다.

높이 1백9㎝,어깨넓이 57.6㎝,무릎폭 84.4㎝인 이 여래상은 800년께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법이 정교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사진만 보면 석굴암 본존불과 흡사한 모습이다.

석재가 화강암이고 나발이나 육계,긴 귀에서부터 목의 3줄 주름,자연스런 옷주름,결가부좌를 하고 무릎위에 얹은 오른쪽 검지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수인도 흡사하다.

몸체는 비만한 편이나 양감 있는 당당한 조각이다.

1927년 이곳에 총독관저를 지은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정원장식용으로 경주에서 가져왔다는데 경주 어디에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유덕사(有德寺)석가여래좌상''으로도 불려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를 보면 유덕사는 신라시대의 태대각간 최유덕이 집을 희사해 지었다는 절이지만 절터가 월성군내라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석불의 위치가 대통령 관저 인근인 만큼 전혀 공개되지 않다가 94년 출입기자들에게 처음 공개되는 촌극같은 일도 있었다.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충주유람선 화재 등 참변이 잇따라 민심이 흉흉해지자 ''기독교신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불상을 연못속에 집어넣은 탓''이란 유언비어가 나돌았기 때문이다.

16일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 대표 53명의 청와대 예방일정에 조계종측이 요청한 이 석불참배가 들어 있다고 한다. 석불의 안전을 확인하려는 것일까,아니면 조계종이나 학계 일부에서 벌이고 있는 문화재 제자리찾아주기운동을 확산시키려는 생각일까.

불교도가 아닌 대통령이 청와대 주인이 되면 왠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불교다.

큰 행사때면 각 당의 정치인들이 빠질세라 다투어 참석하고 있는 것도 그런 감정을 무마하기 위한 배려가 아닌가 싶다.

이 석불이 또다른 유언비어의 요인이 된다면 아예 석불이 있던 경주로 되돌려보내 불자들의 숭모대상이 되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