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곰이 잠자는 주인의 얼굴에 앉은 파리를 잡기 위해 앞발을 들어 내려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파리는 놓쳤을 것이 분명하고 주인은 얼굴이 뭉개져 죽었을 것이 확실하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이솝우화다.

문제는 어리석은 곰이 둔중한 앞발을 휘두르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일들이 현실에서 허다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인-결과 관계가 복잡한 경제문제에 이르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최근의 일만 하더라도 고금리 사채 단속이며,모성보호법이며,저금리 일변도 금융정책이며,임대차 보호법이며,명분지상의 기업구조조정 같은 일련의 선택에서 어리석은 곰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고리사채 단속이 대표적인 사례다.

연 수천%의 고리채를 "박멸하라"는 여론이 높아지자 금감원이 단속요원을 투입하고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나서는 등 전방위 청야(淸野)작전이 개시된 것은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작전이 시작되면서 사채업자들은 모두 문을 걸어닫았고 급전이 필요한 중소기업과 서민들만 죽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의욕과 명분이 앞섰을 뿐 그것이 초래할 부작용에 대한 어떤 진지한 고려도 없었던 탓일게다.

이자제한법이 제정될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제한받는 이자를 시장금리라고 이름짓는다면 서민들의 금리는 시장밖의 금리요,제도권 밖의 돈 값일 뿐이다.

지금 정부 여당이 추진하고 있다는 임대차 보호며,월세 상한선은 또 어찌 그리 발상이 똑같은가 말이다.

모성보호법 역시 비슷한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아름다운 명분과 진취적 내용은 그럴듯하지만 과도한 모성보호가 여성의 취업기회를 원천봉쇄할 가능성에 이르면 이 법은 취업여성과 실업여성의 대립구조로 변질될 게 뻔하다.

명분이 아름답다고 결과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유아취미요, 지나친 순진함일 뿐이다.

주제가 기업퇴출이나 지배구조 문제에 이른다면 사태는 더욱 복잡해진다.

처음에는 구조조정 수단이었던 것이 점차 교조화되기에 이르렀고 지금은 반(反)기업 캠페인의 주된 무기로까지 전락하고 있다.

앞뒤 가릴 것 없는 "죽여라 죽여라"는 함성에 공포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은 위기에 처한 기업들의 몫이다.

한국에서의 기업이란 시장경제라는 간판을 내건 반시장적 여론에 포위되어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업투명성''이라는 말은 ''소유의 사회화''를 추구하는 세력이 항용 내거는 구호에 불과한 것인가.

원칙과 명분을 앞세운 파괴충동(necrophilia)의 분출이라 하겠지만 역시 육성(살리기)보다는 퇴출(죽이기)쪽이 훨씬 간명해 보이는 것은 어리석은 곰의 앞발 내려치기와 다를 게 없다.

기업과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넣을 바엔 그 돈을 실업자 구제에 쓰라는 주장에 이르면 그 단순성은 차라리 정신분열에 가까워진다.

금과옥조 저금리 정책도 마찬가지다.

금리엔 비용과 소득의 양면이 공존하지만 너무도 손쉽게 비용으로만 인식되면서 적지 않은 사단들이 잇달아 생겨나고 있다.

최근의 MMF(머니마켓펀드) 환매소동도 잘못된 금융정책의 결과물이지만 보험사와 연기금이 심각한 경영위기를 예감하고 있는 것 또한 저금리라는 앞발에 얻어맞은 주인의 일그러진 얼굴을 닮아가는 데 다름아니다.

열거하기로 따지자면 오른손 왼손의 10개 손가락을 수도 없이 반복해 꼽아야 한다.

명분론이 우세하고 구호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원인-결과가 미로처럼 꼬여있는 경제가 잘 굴러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명분에 사로잡힌 우리의 곰들은 또 어디를 내려칠 것인가.

정규재 경제부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