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뒤에도 미군정청 고문관들에게 청자나 백자를 선물로 주었을 정도로 한국인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전무했다.

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긴 했어도 초기에는 절의 사미승에게 트랜지스터 라디오 한 대만 주면 문화재급 탱화도 면도칼로 오려다 주었다.

해외전을 한다고 가지고 나간 민화가 사라져버린 예도 부지기수다.

한국은 뒤늦게 70, 80년대에 문화재 열기로 달아 오른다.

73년 박정희 대통령의 고집으로 경주 천마총이 발굴되고 여기서 천마도 금관 등 1만2천여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온 것이 계기가 됐다는게 학계의 분석이다.

''보물찾기''식의 발굴이 이어지면서 점점 과열된 문화재 열기가 불러온 역작용으로 이순신 장군의 ''혈죽도'' 등 ''가짜 문화재''까지 등장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골동품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문화재를 도둑질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풍조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산속에 위치한 사찰은 도둑들의 좋은 표적이 된다.

더구나 국보의 56%, 보물의 65%, 지정문화재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찰 문화재다.

또 감시가 허술한 서원이나 사당 종가가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도 그들이 노리고 있는 대상이다.

지난 15년동안 도난당한 사찰문화재는 모두 4백53점에 이른다.

그중 되찾은 것은 20여점 뿐이다.

전국의 사찰을 돌며 불상안에 보관돼 있는 유물 1천여점을 훔친 대규모 문화재 밀매단이 검찰에 적발됐다고 한다.

그중에는 장물을 사들여 일본으로 밀반출한 뒤 일본에서 정상구입한 것처럼 합법화시키는 ''문화재 세탁''을 시도했던 전 고미술협회 회장도 포함돼 있다.

절의 주지와 경관도 끼어 있다니 놀랍다.

94년 인사동 골동품상인들이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첩 하나를 일본에서 사들여왔다고 해서 진위논쟁으로 떠들썩 했던 적이 있다.

''가짜''도 ''진짜''로 둔갑시키는 문화재 세탁은 이미 새로운 것도 아닌 낡은 수법이다.

철저한 수사로 골동품상들이 이런 수법을 써서 팔아먹은 ''가짜''가 얼마나 되는지 밝혀져야 한다.

일본에서 사들여 왔다면 무조건 ''진짜''라고 믿는 풍조가 개탄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