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제약인의 한사람으로 보령제약 김승호 회장을 생각하면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김 회장은 내가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 가운데 가장 자신의 일에 충실한 분이다.

그 스스로도 "나는 일이 취미야"라고 할 정도로 일을 즐겁게 하는 분이다.

신뢰와 성실을 가장 중시하는 김 회장은 "기업이 신뢰를 잃으면 건강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며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제약인으로서 신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말해 왔다.

이같은 한결같은 마음은 고객중심의 영업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 보령약국 시절에는 거의 모든 약을 다 갖춰 놓고 싼 값에 공급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면 자전거로 신속하게 배달까지 해줬다.

또 고객들에게 제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일일이 오늘날의 DM과 같은 안내장을 발송한 것도 고객만족경영을 앞서 실천한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이런 경영노력은 보령약국의 신화가 용각산이나 겔포스로 이어지게 한 원동력이 됐다.

1993년 필자가 제약협회 회장을 맡기전 김 회장이 전임 회장을 역임했다.

김 회장은 내수시장에 의존하던 제약업계의 구조적인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의약품 연구개발과 수출 활성화에 대한 정책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해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특히 당시 대기업의 제약산업 진출이 러시를 이루자 대기업과 중견제약기업의 역할 분담론이라는 탁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항상 궁리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업계의 활로를 이끌어낸 공로가 크다.

또 김 회장은 지난 89년 6월에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세계대중약협회 제9차 총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선출됐고 91년 제10차 총회를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하는데 공로를 세웠다.

세계대중약협회 총회는 격년으로 열리는 "제약올림픽"으로 서울 총회는 국내 제약업계가 개최한 최초의 국제적인 행사였다.

이 행사는 한국의 제약산업을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김 회장은 은은한 끈기를 발휘하면서도 용각산이나 겔포스 광고를 공격적으로 할때 보면 도전적 기상도 넘친다.

나는 그의 이같은 괴력이 부러울 때가 많다.

보령메디앙스의 탄탄한 성장을 볼때도 같은 생각이 든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종로5가를 누비며 근면과 성실로 보령약국과 보령제약을 일궜다.

줄기찬 노력은 신뢰와 확신을 키웠으며 성공에 이르게 했다고 믿는다.

이종호 < 중외제약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