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인 < 산업은행 감사 >

최근 22조원에 달하는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사실이 밝혀져 큰 충격을 주었다.

또 자료에 따르면,금융감독원이 지난 11년간 감리한 업체 중 35%가 분식회계로 적발되었다고 한다.

대우자동차 매각을 위한 포드와의 협상 결렬 원인 중 하나도 회계장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업이 이렇게 회계를 부실하게 처리하는 이유와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기업들은 증시와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실적을 부풀리는 등 회계를 분식해 왔다.

경기 침체기일수록 이런 회계장부 조작이 많아지고,비자금을 조성할 필요성이 상존했던 기업환경도 이에 일조했다.

뿐만 아니라 회계법인의 ''봐주기식 회계감사''는 분식회계를 조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감사인에 선임되기 위한 회계법인간의 치열한 경쟁은 감사보수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게 책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진 상황에서 충실한 감사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투명하고 신뢰성 있는 회계정보에 대한 수요가 부족한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의 전권을 행사하는 대주주는 회계정보를 독점했고, 소액주주는 회계정보의 진위에 관계없이 시장에서 떠도는 소문에 따라 ''묻지마 투자''로 이익만 내면 만족했다.

금융기관의 대출 결정도 기업의 재무건전성이나 상환능력의 평가보다는 담보나 청탁·압력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부가 제정해 오던 기업회계 기준의 신뢰성도 부족했다.

유가증권 평가방법은 74년부터 98년 사이에 열 한 번, 외화평가 손익은 일곱 번이나 바뀌었다.

투자자나 이해 관계자를 위해 일관성 있게 운영돼야 할 회계기준이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산업정책에 종속돼 제정되고 운영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국제적 회계기준과 크게 다르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경제계에는 긍적적인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한국회계연구원의 출범에 따라 기업회계 기준의 국제화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최근 금감원이 분식회계 근절을 위해 칼을 빼들었다.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면 해당 회사와 대표이사를 사기죄로 형사 고발키로 했다.

또한 외부감사인이 분식회계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사실이 확인되면 사직 당국에 고발할 방침이다.

외부감사인의 자세도 단호하다.

대우계열사 부실감리로 1년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산동회계법인이 자진 해산해 버린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식회계 근절을 위한 각종 대책이 마련돼 기대가 크지만,사회적인 공감대의 뒷받침 속에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도 적지 않다.

가장 근본적인 과제는 회계가 투명하게 이뤄져 기업의 실상이 드러날 경우에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금융, 세제, 회계정보시장 등에서의 발맞춤이 필요하고, 과거의 분식회계에 대한 청산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업이 회계를 정직하게 할 수 있도록 여신조건, 금리결정, 대출한도, 세율 및 세금감면 등 금융과 세제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조명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회계장부를 클린화하는 데는 극복해야 할 난제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기업이 투자자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소송 외에도 급작스런 실적 악화로 주가 하락과 자금 조달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명회계를 위한 각종 조치는 하루라도 빨리 앞당겨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기업가치가 적정하게 시장에서 평가되는 계기가 속히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조익선(早早益善)''이라고 할까.

모든 일의 처리에는 적기가 있는데, 분식회계를 막기 위한 투명한 환경조성은 빠를수록 좋을 듯싶다.

---------------------------------------------------------------

<> 알림 = 독자의 글을 기다립니다.

* 주소 = 100-791 서울 중구 중림동 441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여론독자부

* 전화 = (02)360-4247~8

* 팩스 = (02)360-4350

* 인터넷주소 = reader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