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당국이 신용불량자 구제를 추진하는 취지는 충분히 납득할만 하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도산사태로 인해 신용불량자 수가 2백만명이 훨씬 넘고 연체금을 갚았지만 신용불량기록 때문에 경제활동에 제약을 받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3백만명이 넘는 형편이다.

사정이 이러니 당사자들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대책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최근 고리사채로 인한 서민들의 피해사례가 급증하면서 큰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어 더욱 그렇다.

금융감독원이 마련한 ''신용불량자 관리제도 개선방안''을 보면 현재 5만원 이상의 카드대금을 3개월이상 연체하면 신용불량자로 등록하게 돼있는 기준을 10만∼20만원으로 올리고 카드발급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며, 신용불량 기록을 선별적으로 삭제하는 동시에 일부 신용불량자들의 금융거래를 재개해주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우리는 이중에서도 신용불량자 양산을 막기 위한 사전 예방조치에 주력해야 옳다고 믿는다.

특히 카드발급 대상자의 소득유무를 철저히 확인함으로써 무분별한 카드발급에 제동을 건 것은 당연한 일이며 때늦은 감조차 없지 않다.

그러나 가산금리를 얹어서라도 신용불량자에게 신용대출을 해주라고 종용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고 본다.

살아남기 위해 부실채권을 줄여야 하는 일선 금융기관들과 부실대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은행원들이 과연 얼마나 호응해 줄지 의심되기 때문이다.

백번을 양보해서 신용불량자들을 제도금융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해도 금융기관의 경영건전성에 대한 감독을 본연의 임무로 하는 금융감독당국이 나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용불량기록 삭제가 자칫 우리사회의 도덕적 해이 현상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점도 걱정되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개인신용상태를 파악하기 어려워 금융기관들이 신용대출을 꺼리고 있는 마당에 명분이야 어떻든 신용불량기록을 삭제하는 것은 신용사회 정착을 저해하는 결과를 불러오기 쉽다.

그러므로 신용불량기록을 삭제하더라도 소액 연체자에 한해 거래금융기관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일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신용등급에 따라 카드사용한도를 차별화하는 방안도 원칙적으로 신용카드사에 맡기고 금감원은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경제활동인구 7명중 한명꼴로 신용불량자인 상황을 방치해선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금융기관 영업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