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룡 주일대사가 10일 도쿄발 인천행 비행기에 황급히 몸을 실었다.

같은날 인천공항에선 여야 국회의원들이 도쿄 항의방문을 위해 줄이어 항공기에 탑승했다.

한국의 고위 공직자들이 같은 날 현해탄을 대거 오간 원인은 한가지였다.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때문이었다.

한국정부가 최 대사에게 일시귀국 명령을 내린 사실을 일본 언론은 빅 뉴스로 다루고 있다.

이번 조치가 소환이나 마찬가지라는 한국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 상대국에 대한 불쾌감과 항의표시 수단으로 쓰이는 소환카드가 나온 배경과 사태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교과서 왜곡이 한.일관계와 한국민의 정서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한다면 마땅한 보도태도다.

그러나 일본 언론이 주목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정치적 계산의 개입여부다.

한국정부가 한.일 우호관계 손상을 원치 않으면서도 귀국 카드를 내놓은 것은 야당공세와 국민적 비판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일본 언론의 관측은 아전인수격 해석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본 언론의 시각 형성에는 한국정부도 근거를 제공했다는 인상을 면키 어렵다.

검정결과 발표 직후 "유감" 표명에 그쳤던 한국 정부가 근 1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강경자세로 돌아선 것을 일본 언론은 특히 주목하고 있어서다.

서울쪽 분위기가 험악해졌는데도 일본 정부는 태연하다.

관방장관은 일본의 역사인식에 변함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한국이 남북한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일본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월드컵을 앞두고 우호에 금이 가는 걸 원치 않는다는 카드를 읽고 있는 셈이다.

교과서 재수정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주일대사관 고위관계자는 일본이 들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털어놨다.

한국정부가 뒤늦은 강공에 나섰지만 교과서 문제는 일본의 의중대로 끝날 공산이 매우 크다.

서울쪽에서 해야 할 일중 하나는 극우, 폐쇄국가로 치닫는 일본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요, 교과서문제의 정파싸움 악용을 경계하는 것이다.

일본이 던진 돌맹이 앞에서 국론분열의 양상을 노출한다면 한국은 또 한번 얕잡아 보일 수 밖에 없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