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12월8일 미국 보스톤에서 태어난 듀란트는 미시간주에 있는 플린트에서 자랐다.

듀란트는 16세때 교장선생님과의 의견대립으로 학교를 중퇴한다.

이후 친척이 경영하는 폐품수집소에서 일하지만 몇 달 후 그만두고 다양한 직업을 전전한다.

특히 영업쪽에 재능을 보여준 듀란트는 1881년 재정난에 빠진 플린트시의 상수도 회사를 8개월만에 회생시키면서 경영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24세가 되던 1885년,듀란트는 달라스 도트를 만나 이륜 마차를 만든다.

이 후 둘은 듀란트-도트 마차 회사를 설립,이륜 마차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많은 돈을 벌게 된다.

1903년 데이비드 뷰익을 만나게 된 듀란트는 말없는 마차에 대한 상상을 시작하고,결국 함께 뷰익사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자동차 생산에 들어간다.

이어 1908년 9월16일 여러 소규모 자동차회사의 매수와 합병을 통해 제너럴 모터스(GM)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듀란트는 하나의 완전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자동차부품 및 주변부품 회사를 매입하기도 하였다.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노스웨이 모터 앤 매뉴팩처링사와 스파트 플러그를 생산하는 챔피언 이그니션사,바퀴와 축을 생산하는 웨스톤 모트 등이 그 대상이었다.

이후 듀란트는 헨리 포드에게 8백만 달러를 제시하며 포드를 넘길 것을 요청한다.

1909년 10월 헨리는 듀란트의 제의를 받아들이지만 은행과의 문제로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다.

1910년 미국 자동차업산업의 22%를 차지하고 있던 제너럴 모터스는 제정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듀란트는 결국 회사를 채권단에 넘긴 뒤 이사회 임원의 자리를 맡게된다.

5년후에 제너럴 모터스는 자동차산업에서 5%의 비중만 차지하게 된다.

듀란트는 회사로 돌아왔지만 그는 기업가였지 관리자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창립한 회사의 비용과 지출부문을 전혀 통제하지 않았다.

자신이나 회사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상관없이 확장만을 추구했다.

또한 자동차 시장 경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1920년까지 개인부채로 수백만달러를 소비하기도 했다.

미국 증시의 폭락과 함께 제너럴 모터스의 주가도 한달간 35%가 떨어지면서 듀란트는 1920년 12월1일 은행의 재개입으로 회사를 포기하고 만다.

그는 모든 노력을 제너럴 모터스라는 거대한 기업을 만드는데 쏟아 부었지만,아무런 조직적 혹은 재정적인 골격이 없어 산만하기만 하고 뒤범벅이 되었던 것이다.

이듬해인 1921년 1월 듀란트는 듀란트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고 재기를 모색한다.

1922년에는 현대적인 디자인의 4 실린더 차량인 "스타"를 생산하기도 하였으나 1930년 다시 찾아온 주식시장 폭락에 타격을 입고 1933년 파산신청을 내고 만다.

이후 볼링장 체인사업을 포함한 자동차와 관련없는 4개의 벤처사업을 시도하지만 모두 실패하는 불운을 겪었다.

지금 세계 최대의 자동차업체로 성장한 GM의 창립자 듀란트는 헨리 포드가 죽은 해와 같은 1947년 3월18일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

손을래 수입자동차 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