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자오(朱邦造)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3일밤 10시(한국시간 11시) 내외신 기자들을 급히 불렀다.

9시20분쯤 "미·중 공군기 충돌사건에 대한 특별 브리핑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외교부로 향했다.

브리핑실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 대변인의 다소 격앙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미국의 즉각적인 사과가 사건해결의 첫 순서다" "우리는 정찰기를 조사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말이 이어졌다.

사건발생 후 적극적인 반응을 삼가온 중국이 공세로 전환하는 순간이었다.

주 대변인의 심야 브리핑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미국의 저명한 중국전문가인 해리 하딩 조지워싱턴대 교수를 떠올렸다.

그는 지난 92년 미·중 관계를 논하는 책을 쓰면서 제목을 ''깨지기 쉬운 관계(fragile relationship)''로 잡았다.

양국은 사소한 일에도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주제였다.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지금 미·중 사이에 남은 것은 동아시아 패권경쟁,경제실리 뿐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양국관계는 공군기 충돌이전 이미 깨져가고 있었다.

부시행정부는 출범과 함께 대만 무기판매 강행,국가미사일방어(NMD) 추진,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 방해,베이징 올림픽 유치 반대 등 중국공세 고삐를 조였다.

중국의 반발은 당연했다.

공군기 충돌은 불똥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그러기에 이번 사건은 향후 미·중 관계,나아가 동아시아 정세구도를 결정지을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중국의 속셈은 분명해 보인다.

거듭되는 미국의 대 중국 압박을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지금 미국은 호락호락 중국의 역공에 끌려 다닐 것 같지 않다.

여기서 밀리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정찰기 카드''가 오히려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 숨어있는 강경 보수세력을 자극,''중국 위협론''을 부채질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세계는 지금 양국 관계가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안정기를 마감하고 또 다른 위기시기로 빠져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눈으로 이번 사건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