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씨는 IMF형 퇴직자다.

50대 초에 실직한 H씨는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중소기업에 다녔던 그는 대학에 들어갈 자녀때문에 경제활동을 해야 했지만 재취업은 불가능했다.

더욱이 주식투자 실패로 여유 자금도 넉넉치 않았고 뾰족한 기술도 없어 창업을 하기 힘들었다.

이 때 귀가 솔깃한 정보가 들어왔다.

골프 연습기를 2천만원어치를 구입해 운영하면 한 달에 2백만원은 벌 수 있다는 내용 이었다.

골프 연습기는 5백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퍼팅 연습과 함께 골프 게임도 할 수 있는 기계였다.

설치 장소는 당구장이 최적이라는 게 회사 영업사원의 말이었다.

가격은 한 대에 2백만원 선이었다.

그러나 골프 연습기 판매회사는 한 두대 씩은 팔지 않고 한꺼번에 열대이상 씩 대량으로만 팔았다.

당구장은 주변에 널려 있어 연습기를 설치할 장소는 구하기 쉬울 것으로 판단했다.

기계를 사기전에 당구장을 찾아가 주인을 설득한 결과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당시 유명 골프 선수의 활약 덕분에 골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확산되고 있어 최고의 유망 아이템으로 기대를 걸기에 충분했다.

H씨와 같은 사람이 많았던지 골프 연습기는 한동안 인기를 모았다.

골프 연습기가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H씨는 퇴직금중 남은 돈에다 대출까지 받아 열 대를 구입했다.

그리고 당구장 열 곳에 골프 자판기를 설치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열흘이 지났다.

떼돈은 아니더라도 짭짤한 수입을 올릴 것이라는 기대는 조금씩 무너졌다.

이용자들의 반응이 냉담했다.

당구장을 찾는 손님들은 골프 자판기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게다가 기계까지 말썽을 부렸다.

골프공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퍼팅이 제대로 안됐고 작동이 끊기는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골프 연습과 오락을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락 기능은 거의 없었다.

장소를 옮겨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기계 열 대에서 한 달 교통비도 안나와 손해가 컸다.

기계는 자주 고장났고 기계를 판매한 회사는 애프터 서비스도 하지 않았다.

설치비로 부수입을 기대했던 당구장 주인들은 고장으로 손님들의 불평이 이어지자 기계를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기계를 구입했던 다른 사람들을 수소문해 사정을 알아보니 H씨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결국 H씨는 기계를 모두 수거해서 폐기처분하고 말았다.

H씨의 실패 원인으로는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다.

너무 쉽게 돈을 벌려고 했던 게 가장 큰 원인이다.

누군가가 큰 노력없이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할 경우 반드시 의심해 봐야 한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기계를 구입하기 전에 성능을 제대로 체크하지 않은 점도 실책이다.

구입 결정을 조금만 보류해도 성능 확인이 가능했지만 영업사원의 말만 믿은 것은 잘못 이었다.

검증이 안된 신규 아이템을 택한 것도 무모했다.

창업 아이템을 택할 때는 반드시 성공 사례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H씨등 많은 사람들은 잘될 것이라는 기대만 갖고 기계를 구입했다.

고객에 대한 분석도 부족했다.

골프와 당구를 즐기는 계층은 크게 다르다는 점을 간과했다.

다른 사람들이 앞다퉈 기계를 구입한다고 해서 너무 쉽게 창업을 시작한 것은 잘못이다.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도 되는 양 서둘러 계약을 했다.

창업은 과감해야 하지만 신중함도 필요하다.

당신이 보다 철저해지지 않는다면 제2,제3의 H씨가 될 수 있다.

(02)786-8406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 천리안 유니텔 PC통신 GO LKH